등장 하는 인물
남자
친구
사장
공무원
1.
'남자'가 사는 수원시 팔달구의 1인가구 원룸.
언뜻 보면 이곳이 식물원인가 오해될 정도로 각종 식물이 꽉 들어차 있다.
남자, 맥미니가 놓인 작업 책상 앞에 앉아 있다. PC에는 hwp파일이 여백으로 켜져 있으나
남자는 스마트폰으로 고개를 내리 꽂으며 인스타그램 릴스에 집중하고 있다.
효과음, '안녕! 아이찡입니당! 이꺼 제 이모찌야', '엘을 가져가! 크림치즈 허니!', '프랑스 시위! 1분 요약, 스타트!'...
그때, 남자의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진동음. 우웅, 우웅...
남자
왜.
친구
(스피커 폰)모하냐.
남자
걍 앉아 있어. 왜.
친구
왜 안 나가.
남자
어딜.
친구
딸배 안 뗘?
남자
비 오잖아, 지금.
친구
븅신아. 비올 때 해야지.
남자
쳐 뒤질 일 있어, 뭐.
친구
야. 넌 어디 가서 딸배라고 하지 마라. 직업정신 존나 없네, 이거. 비 오는데 사람들 밥은 어케 먹냐?
남자
씨바, 저번에 대갈통 깨질 뻔하고 다신 안 타. 비 오면.
친구
야, 그 블빡 영상 다시 쫌 보내주면 안 되냐? 존나 웃겼는데, 그거. 저장 모댔네.
남자
조 까. 지금 나가 있는 거?
친구
어, 단가 뒤져, 지금. 빨리 나와, 너도, 지금.
남자
아, 싫어.
친구
같이 전화하면서 하자. 심심해.
남자
됐어, 싫어.
친구
아니, 비오는 날 안 하면. 뭐 겨울 되면 어케 할래, 너. 아스팔트 그냥 스케이트장 되는데.
남자
안 그래도 한 12월 부터 2월 까지는 걍 서빙 알바 하나 구해서 할려고.
친구
이 병신아. 겨울에 뛰면 새끼야 시급이 삼만 원인데. 조 빠지게 해도 에게 만 원 주는 걸 왜 하냐.
남자
내 수학에서는 그게 수지타산이 존나 안 맞아. 뒤지면 어떡해.
친구
넌 그냥 돈 쳐 벌지 마.
남자
그래. 열심히 하고.
친구
전화는 해주면 안 되냐?
남자
유튜브 들으면서 해.
친구
볼 거 다 봤어. 흑자헬스, 악 캐스트, 코트 풀버전도 다 봤어, 이제.
남자
그거 봐 봐. 통통배.
친구
그게 뭔데.
남자
있어. 김간지 팟캐스트. 개 재밌는데.
친구
김간지가 누군데.
남자
...있어. 음악하는 애.
친구
됐고. 전화 쫌만 해줘. 30분만.
남자
그래. 뭐 지금 얼마 벌었는데.
친구
어, 잠시만. 안녕하세요. 배민 QK요. 얼마나 걸려요?
남자
...
남자, 작업 책상에 엎드린다.
그때, 남자의 어두웠던 원룸이 갑작스레 노란 조명으로 휩싸인다.
어리둥절한 남자.
친구
아, 씨바. 조리완료라 해놓고 무슨 5분을 기다리래. 탕수육 하나 쳐 빼먹어버릴까 보다.
남자
뭐냐, 저거.
친구
뭐가.
남자
아, 씹... 진짜.
친구
왜.
남자
아, 집 앞에 치킨집 새로 생겼는데. 간판 지랄났네 진짜.
친구
뭐 어떻게?
남자
노란색 발광 조명 개 쨍하게 해놨는데. 간판도 개 커서 걍 우리집 노란색 돼뻐리는데?
친구
존나 웃기네. 지금 켠 거야?
남자
어. 오늘 가오픈이다 뭐다 하더니. 아, 장난하나.
친구
존나 웃기네. 암막커튼 하나 사야지, 뭐.
남자
뭔 암막커튼이야. 내가 쟤네 때문에 왜 사야 돼. 내 집인데.
친구
뭐 어떡해, 그럼.
남자
내려가서 말 좀 하고 와야겠다.
친구
자영업자 힘든데 뭐라 하지 마라.
남자
아니, 뭘 뭐라 해. 그냥 간판 쫌 줄여달라 해야지.
친구
그럼 에어팟 끼고 가서 나 좀 들려주면 안 되냐?
남자
꺼져. 이따 전화 할게.
친구
아, 아쉬워. 이따 꼭 전화해라.
남자
어 끊어.
친구
꺼져.
남자
대갈통 깨져라.
친구
응.
남자, 겉옷을 대충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2.
팔달통닭 가게 30평 쯤의 내부. 얼마 없는 손님들이 치킨을 먹고 있다.
50대 중반 즈음의 사장, 카운터에 서서 흐뭇하게 가게 내부를 보고 있다.
남자, 등장.
사장
어서오세요!
남자
아, 안녕하세요.
사장
몇 분이실까요?
남자
아, 그게 아니라.
사장
네, 혼자서도 식사 가능하십니다.
남자
아뇨, 그게 아니라.
사장
네?
남자
아, 우선 개업 축하드려요.
사장
아, 네... 감사합니다.
남자
다름이 아니라 이 앞에 사는데요. 요 앞에 빌라.
사장
네, 네.
남자
간판이 너무 밝아서, 집에 조명이 다 들어오거든요.
사장
아... 저 일단 나와서, 예.
남자
네?
사장
일단 나와서 얘기하시죠. 손님들도 있는데.
사장, 가게 밖으로 나선다. 남자, 따라나선다.
사장, 남자, 비를 맞으며 마주 선다.
사장
그래서 간판을 어떻게 하라고요?
남자
네? 아니, 간판이 이렇게 큰데. 이렇게 밝게 해놓으면.
사장
아니, 간판 이 정도도 안 하고 장사하는 데가 어딨어요?
남자
아니, 지금 제가 싸우러 온 게 아니라 조율하려고, 대화하려고 온 거잖아요. 좀 줄일 수 있냐고 여쭤보려고 했는데.
사장
일단 지금 바쁘니까. 저기, 나도 이거 간판 해준 데랑 얘기하고 뭐 줄일 수 있는지 알아볼테니까. 내일 와요, 내일.
사장, 급하게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남자
...
3.
다음 날, 낮. 해가 쨍하다.
팔달통닭 가게 내부. 사장, 오픈 준비 중으로 바빠보인다.
남자, 등장.
남자
사장님, 안녕하세...
사장
아니! 계속 이렇게 찾아오면 어떡해요!
남자
네?
사장
바쁜데 자꾸 이렇게 찾아오면 안 된다니까.
남자
아니, 사장님이 내일 오라면서요.
사장
왜 이렇게 찾아 와, 곤란하게.
남자
아니 간판 어떡할 거냐구요.
사장
아니 젊은 사람이, 진짜. 간판 안 달고 장사하는 사람이 어딨어?
남자
간판 달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아니. 사장님 이거 불법인 거 알죠?
사장
뭐가 불법이야!
남자
이거 간판 허가 받은 거 맞아요?
사장
불법이고 뭐고 모르겠고. 신고하든지 말든지. 어?
사장, 남자의 어깨를 밀며 내쫓는다.
남자
아니 이 씨발. 건들지 마세요.
사장
나가, 빨리! 신고 하든지 말든지.
남자
사장님이 신고하라고 했어요?
사장
어, 신고 하고. 찾아 오지 마.
남자
후회하지 마세요, 진짜.
사장
빨리 가!
남자, 씩씩거리며 가게를 나선다. 집을 향해 빠르게 걷는다.
남자
넌 좆 됐어, 이 씨발새끼야.
4.
다다음 날. 남자의 방 안. 방은 여전히 노랗게 노랗게 물들어있다.
남자, 스마트폰을 들고 어딘가로 전화한다.
공무원
(스피커폰)네, 안녕하세요. 팔달구 환경위생과입니다.
남자
네, 안녕하세요. 그 빛 공해 민원 넣었었는데. 그거 관련해서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 민원번호 불러드리면 되나요?
공무원
어, 위치가 어디세요?
남자
여기 그 팔달시장 뒤 쪽이요.
공무원
팔달시장, 혹시 그 팔달 통닭 말씀하시는 거예요?
남자
네, 맞아요, 맞아요.
공무원
아, 네, 네.
남자
네, 그거 제가 넣은 건데. 혹시 어떻게 절차가, 어떻게 진행이 되는 건가요?
공무원
아 저희가 이제 빛 공해 방지법에 따른 조명 기구들이 법으로 정해져 있어요. 근데 이제 광고 간판 같은 경우에는 옥외 광고물법에 따라서 이제 허가 대상인 조명들만 빛 공해 방지법에 따라서 빛 방사 허용 기준을 준수해야 되는 광고 조명들이거든요. 네 네, 근데 이제 저도 이제 건축과에 그래서 그건 이제 옥외 광고물법은 건축과 소관 사항이라서 저도 건축과에다가 확인을 해야 돼요.
남자
네, 네.
공무원
근데 이제 제가 답변 받기로는 이제 거기가 허가 대상인 광고물인데 허가 불가라고 제가 일단은 답변을 받았거든요.
남자
허가 불가능하다는 게 거기가 그 허가를 안 받았다는 거죠?
공무원
응, 그러니까 허가도 안 받은 데다가 허가도 해줄 수 없는 광고물이다. 이렇게 답변을 받았어요. 근데 이거는 제가 지금 이제 제 담당이 아니다 보니까 저도 일단은 건축과에서 답변 받은 대로 알려드리는 건데 그거 관련해서는 건축과 광고물 관리팀에다가 한번 여쭤보셔야 될 것 같아요.
남자
네네네.
공무원
응, 그거는 한번 여쭤보셔야 될 것 같고. 만약에 이제 제가 답변 받은 대로 허가 불가인 거면은 아마 철거를 해야 되거나 그런 걸로 저는 알고 있거든요. 네, 네. 그래서 이제 만약에 철거를 해야 되는 광고물이면은 일단은 저희는 일단 뭐 빛 방사 허용 기준을 준수하는지 뭐 그런 거 빛 공해 빛 측정 같은 경우는 약간 좀 어려울 것 같아서.
남자
아, 허가 불가니까 아예 측정할 필요도 없는 상황인 거예요?
공무원
만약 철거 예정인 광고물이면은 예 약간 좀 측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는 하거든요. 그래서 음 일단 그래서 저도 건축과 쪽에 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실하게 좀 답변을 받아야 되는 상황이어서. 네. 거기서 일단 철거 계고를 했다고 하면은 저희는 일단 답변은 약간 좀 이제 빛 방사 아, 빛 측정은 약간 어렵다고. 그래서 이제 건축과에다가 한번 문의해보시라고 이렇게 답변을 나가려고 하거든요. 저희는. 근데 지금도 계속 그 조명을 켜고 있나요?
남자
아, 네, 네. 맞아요.
공무원
네, 어제까지, 어제 저녁까지도 계속 그렇게 했다는 말씀이시죠?
남자
계속 키고 있어요.
공무원
그러면은 그거는 일단 사업장에다가 일단 소등은 하시라고 제가 말씀을 드릴게.
남자
아, 네, 네. 감사합니다.
공무원
일단 그러고 이제 그 간판 이제 뭐 철거해야 되는지 뭐 그런 약간 그런 이제 설치나 철거 관련해서는 건축과에다가 문의를 한번 해보셔야 될 것 같거든요.
남자
네, 제가 직접 하면 되나요?
공무원
응, 직접 문의하셔도 되고. 아니면은 뭐 제가 물어본 다음에 다시 알려드릴까요?
남자
아, 제, 제가 직접 한번 해볼게요.
공무원
아, 그러면은 번호를 하나 알려드릴게.
남자
아, 제가 안 그래도 그 옥외 광고물 거기 팔달 통닭 튀어나온 간판 이런 거 다 해가지고. 건축과도 알고 있어요.
공무원
아, 알고 계시구나. 네, 네. 그러면은 거기다가 한번 여쭤보시면 될 것 같아요.
남자
네, 네. 그 팔달 통닭에 전화해서 소등 그거는 오늘 해주시는 거예요?
공무원
아, 네, 네, 네. 오늘 전화 아니고. 오늘 가서 말씀드릴게. 지금 오픈해 있는 거잖아요?
남자
네, 맞아요.
공무원
예, 가서 직접 말씀드리려고요.
남자
아, 네. 감사합니다.
공무원
네, 감사합니다, 네.
5.
다음 날, 수원시 팔달구의 거리. 비가 오고 있다. 남자,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알바를 하는 중이다.
남자의 스마트폰에 전화가 온다. 남자, 헬멧에 부착된 블루투스 기기로 통화한다.
남자
왜.
친구
어케 됐냐?
남자
간판?
친구
어.
남자
철거한대.
친구
엥? 왜?
남자
몰라. 애초에 불법이었대.
친구
민원 넣었냐?
남자
어. 구청에.
친구
와, 너 존나 나쁘다.
남자
몰라. 나도 철거 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 아, 존나 그니까 좋게 말할 때 좀 들어주지.
친구
그 사장은 뭔 날벼락이냐. 이제 오픈했는데.
남자
그니까.
친구
너 근데 지금 뭐, 딸배 뗘?
남자
어.
친구
비오는 날 안 한다매.
남자
다음 주 월센데. 빵꾸날 거 같애서.
친구
씨바, 미리미리 했으면 됐잖아.
남자
이제 들어갈 거야. 지금 롯데리아 가는 중.
친구
롯데리아 존나 맛 없는데. 버거킹 가.
남자
주변에 24시 여기 밖에 없어.
친구
존나 촌 동네네, 수원. 뭐 먹을 건데.
남자
몰라. 이번에 뭐 흑백요리사 콜라보 했던데.
친구
먹고 후기 좀.
남자
잠시만. 와 좆 됐다.
친구
왜
남자
그 사장 있다. 간판 사장.
친구
롯데리아에?
남자
어.
친구
야 씨바 마주치지 마. 너 칼 찔려.
남자
어, 그래야겠다. 존나 무섭네.
친구
시켜먹어, 그냥.
남자
아, 눈 마주쳤다.
친구
뭐?
남자
일로 오는데? 잠만.
사장
저기, 저기요!
남자
왜요.
친구
야, 잘못 되면 내가 신고해줄게.
사장
저기, 간판 그거 있잖아요. 내가 그거 불법인 줄 몰랐어. 근데 그렇게 신고를 하면...
남자
아니, 사장님이 신고하라면서요.
사장
아니, 그게, 그러니까. 이게 내가 장사가 이번에가. 원래 내가 사업만 하던 사람이에요. 사람 대하고 이런 게 좀 서툴러. 내가 좀 유하게 하고 했어야 되는데. 그 오픈을 이제 했으니까. 정신 없고 해서. 내가 좀 많이 무례했던 거 같습니다. 네.
친구
와, 사장 존나 착하네.
남자
아, 아니에요. 저도 죄송합니다.
사장
(치킨이 든 봉지를 내밀며) 이거 그 내가 미안해서. 언제 한번 대접을 해야지 했는데. 이거 방금 튀긴 거거든요. 이거 좀 먹어보라고.
남자
네? 아니, 아, 괜찮은데.
사장
아니야, 먹고. 이거 먹고. 다음에 또 놀러와요. 내가 대접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친구
와, 뭐냐, 존나 부럽네.
남자
아, 감사합니다...
사장
응, 맛있게 먹고요. 응.
남자
식사하러 오신 거예요?
사장
응, 여기 뭐. 가게 끝나고 대충 떼울 겸 해서. 24시가 여기 밖에 없어.
남자
아... 제가 식사 이거 한번 사드릴게요.
사장
아냐, 아냐. 주문 해가지고, 이제. 응.
친구
야, 착한 척 하지 마 씨발아.
남자
아... 네. 다음에 한번, 네, 그럼. 아, 이거 잘 먹을게요, 진짜.
사장
응, 응.
남자
후라이드에요? 이거?
사장
아니, 이거 왕갈비통닭이라고. 제일 잘 나가는 거.
남자
아, 귀한 거 주셨네. 진짜 잘 먹을게요.
사장
응, 먹고. 언제 한번 놀러와요.
남자
네, 네. 놀러갈게요.
사장
응, 들어가.
남자
네, 들어가세요.
친구
와, 존나 계탔네.
남자
그러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