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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푸쉬업.

엄마가 술에 취한 모습을 마주하면

그리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기억들이 몰려오고,

그것은 엄마의 술 때문에

경험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뻔했던 것들, 이를 테면

수원지방법원에 들락날락하는 것, 사람이 자해하는 장면을 보는 것, 술 취함에 계단에서 굴러 온몸이 피범벅 된 사람을 보는 것,

들은, 엄마의 술먹음으로 인하여 초래되었기에 엄마의 만취 현장을 볼 때면 나는 급격히 우울해진다.

그래, 나는 우울해진다. 그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글로도 적지 않았다만, 이제는 쓴다.

엄마의 술먹음으로 인해 나의 정서는 갉아먹히고 있다.

 

나는 사람이란 건 아주 힘들게 바뀔 수 있다고 믿는 부류의 인간이다.

그러나 엄마는 술을 먹지 않겠노라고 한 1년 전에 선언하였었는데, 그게 또 몇 달 됐다고 야금야금 술을 사 오더니 잠에 들 만큼만 먹겠다는 소리를 했고, 이제는 또 속상한 일이 생겼다는 소리를 양심 삼아 만취의 수준으로 쏘주를 들이키고 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죽어도 생각하기 싫지만

각종 술로 인한 사건사고로 자신이 책임져야 할 가정의 구성원들을 그토록 힘들게 만들어 놓고

쏘주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형국을 바라볼 때면, 정말이지 죽고 싶어 진다.

죽고 싶어 진다. 9시간의, 주방알바라고 불리우는 설거지 알바를 하고 온 일요일 날은

몸은 힘들지만 그리 죽고 싶진 않았다.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해 얼른 귀가를 하여 푸쉬업을 20개씩 5세트를 하고 잘 계획을 지니고 있으리 만큼 죽고 싶지 않았는데, 그날도 식탁에 앉아 쏘주를 까고 있는, 만취한 엄마를 마주한 것이다.

술을 왜 이렇게 많이 마셨냐는 나의 질문에 엄마는 엄마가 캐디로 일하는 회사 동료 구성원 중

해경이 이모라는 사람이 억울하게 회사로부터 해고당한 사건을 우는 소리로 하였다. 해경이 이모라면 나에게 한 해에 한 번은 5만 원씩 용돈을 꼬박꼬박 쥐어주었던 사람인데,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나에겐 그저

좆같은 소주병과 좆같은 새우만두 안주가 식탁에 놓여있다는 게 분노를 들끓게 했다. 얼른 들어가서 자라는 구박 같은 소리를 한 세 번 들은 엄마는 그제서야 역겨운 소주냄새를 풍기며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나에게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건강한 부모와 돈이 적당히 있는 집안과 그런 정서적 안정화의 밑에서 여실히 하고자 하는 일에 노력을 투여하는 자식들을 상상했다. 엄마의 술버릇 주특기인 비명 지르듯 울기가 발동된 시점에서

나는 그 소리가 정말 죽으리 만큼 듣기 싫었으므로 고막이 찌부될 만큼 귀를 꽉 막은 채 나의 방으로 황급히 대피한 뒤

신속하게 나의 갤럭시A51 스마트폰의 블루투스 기능을 활성화시키고 가수 이소라의 노래를 재생하며 볼륨을 최대치로 높여놓은 뒤에야

구린 한숨이 나오며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러고는 어떻게든 삐져나오려는 상상들, 수원지방법원과 자해하는 장면과 피범벅의 사람의 상상들을 간신히 막고선 가수 이소라의 목소리에 집중을 애써본다. 미래가 없어지고 희망이 사라지고 해 왔던 모든 의지가 시궁창으로 곤두박질친다. 우리 가정의 안정보다 해경이 이모의 안녕스러움에 더 관심사를 두는 엄마가 죽도록 원망스러워지고 엄마는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이혼을 하여 한부모가정을 자초한 것인가 하고 의심스러워진다. 그리고

엄마의 비명 지르듯 울기가 멈춘 시점에서

 

나는 거실로 나가 푸쉬업을 했다. 20개씩 5세트를 했다.

미래와 희망과 의지랄 것이 곤두박질쳐지는 심정에도 나는 해야만 했다.

개 같은 상황 속에 놓여도 개 같은 세상은 개 같은 상황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이 개 같은 사람이라 개 같이 된 거라며 지껄이니까.

그래서 나는 푸쉬업을 하고, 그럼에도 사람은 아주 힘들게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며 맘 속에 세번 새겨야 했다.

엄마 같은 사람이 되기가 죽도록 싫다. 정말로 싫다. 엄마의 술이 내 삶을 잡아먹게 가만 둘 수가 없다.

내일 엄마가 술을 먹어 객사를 하고 용인대학병원에서 나의 갤럭시스마트폰으로 부고 문자를 보내오더라도

나는 푸쉬업을 20개씩 5세트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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