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착화 되지 말자.
그게 상승세든 하락세든 변화를 미덕으로 여기자.
늙은 내가 못 이룬 젊음의 꿈으로 노스텔지어에 아파하며
다른 젊은이에게 구린 조언을 늘어놓는 처지를 면했으면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없다. 이해 못함은 나의 무지를 기반으로 한다.
도전과 시도의 차이점은 그걸 행하였을 때 그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지의 유뮤로 결정된다.
그래서 시도는 비교적 쉽고, 도전은 무섭다.
삶 자체가 무서운데 무서운 도전까지 하며 살겠다는 건
아리에스터 감독의 오컬트영화를 내내 보는 것만 같은 삶일 거다.
그러나 러닝타임이 제 아무리 길어도 영화는 언젠가 끝난다. 아리에스터 감독의 영화를 나는 즐기고
정치적인 의미를 떠나 항시 진보적인 자세로 포즈를 잡자.
뭔 벌써부터 지킬 게 있다고 주먹 뻗기를 공포로 여기지 말자.
홀어머니가 걱정되긴 하는데, 미안할 필요도 없이 나는 나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이타심은 이기의 완성으로 발현된다. 이타심만을 위한 이타심은
그 이타의 대상까지도 피곤하게 만들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나 자체가 피곤한 사람인데
어찌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순 없는 거다.
사고사가 고마울 것 같은 삶에서 자살하지 않고 있는 건
사실 사고사도 당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을 반영하고 있다.
살고 있는 건 나의 책임이다. 죽은 자에 비해 움직여야 한다.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어떤 위로와 동정이 통하지도 않게
이건 나의 책임이다. 책임. 그래, 책임을 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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