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구를 실패했다. 정확히는 야구선수가 되는 꿈에 실패하고 말았다.
무릎을 다쳐 거액의 수술비로 집의 돈을 다 까쳐먹음에도 불구, 나는 야구선수가 되지 못 했다.
야구의 실패는 나에게 겁쟁이 성격만을 남겼다.
용인의 양감독님이든, 청주의 유감독님이든,
야구소년인 나에게선 공포의 존재였다. 나무방망이로 엉덩이를 얼씬 두들겨맞으면 궁둥짝에 보라색 오로라가 생성되었고,
우리 야구부원들은 그것을 '우주'라고 불렀다.
우주가 형성된 날은 버스타기가 무서웠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면 우주의 고통이 저릿저릿했다.
나는 방망이가 싫었다.
그래서 감독님이 싫었다.
감독님을 피해다녀야 했다. 그래서 눈치를 봤다.
눈치를 보는 생활을 5년간 지속하니,
눈치를 보는 것은 이제 습관이 아니라 본능에 가까워졌다.
감독님한테 맞지 않으려면 감독님을 피해다녀야 했다.
그리고 나는 야구에 실패했고, 정확히는 야구선수가 되는 꿈에 실패하고 말았는데,
타인의 눈치를 살살 살피는 겁쟁이 성격은 그대로 남아있다.
사람들에겐 모두 방망이가 하나씩 쥐어져 있다.
나는 그것에 맞기 싫은 것이다. 우주의 고통을 다시는 겪기 싫은 것이다.
타인의 별 거 아닌 행동과 말 한마디에 나의 일상이 파괴당한다.
눈치를 보며 타격훈련과 수비훈련을 하고, 숙소에서까지 눈치를 보며 샤워를 하고 잠에 들었던 소년이
나의 내면에 아득하고도 구체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무섭다. 깊게 스며든 우주의 공포는 그 이름따라 크기도 우주인 걸까.
그걸 극복하고 싶다.
방망이에 좀 맞더라도, 존중하지 못할 것을 철저히 무시하고, 맘에 안 드는 것들에게 쌍욕을 퍼부워도,
되는 사람으로 변화하고 싶다. 예의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다루기 쉬운 사람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이 틀어짐과 타인의 기분을 생각해 무조건적인 예의와 존중을 갖추지 말자.
그 방망이에 좀 맞더라도, 야구소년도 그 고통을 참으며 5년은 견뎠으니,
지금의 나도 5년 이상은 견딜 수 있을 거다.
좀 하고 싶은 대로 하자. 나의 자유의지는 그 우주의 크기 또한 극복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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