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괴롭다. 고통은 원래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견딜 만한 고통도 분명 있다.
그건 내가 자처한 고통이었을 때다.
마땅한 이유와 꿈을 지닌 채
희망을 안고 내 스스로 자처하며 뛰어든 고통 속에선,
그나마 버틸 만한 요소들이 있어
똥꼬에 힘을 주면서도 계속 버티게 된다.
그러나 그 고통을 내가 원하지 않았고,
외압으로부터 내 일상에 끼쳐 든 고통이라면,
그만큼의 지옥이 또 없더라.
내 이성과 감정으로 철저하게 짜여진 논리의
고통이 아니라면
나는 철저하게 괴로워지더라.
자처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힘주어 지장을 찍어본다.
나는 남의 시놉시스와 남의 기획안으로
대본을 쓸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본 쓰는 건 힘들다.
그러나 내 대본을 쓸 때는 즐거웠고,
고통이 찾아와도 내가 내 스스로 자처한 것이라
견뎌야만 했고,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남의 방구는 후각을 괴롭게 하는 반면,
내 방구는 항상 꼬수웠다.
방구를 손바닥에 움켜잡고
내 콧구멍으로 손을 가져다 댄 적이
그토록 많지 않나.
똥도 내가 싼 똥이면 그나마 덜 혐오스러웠다.
남의 똥을 공중화장실서 목격했을 때 욕설이 나오는 반면에 말이다.
제 아무리 더러워도 내 것이어야 한다.
남의 것으론 그 무엇도 쓰지 않겠다.
내가 좋은 기술과 좋은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똥에서도 향긋한 냄새가 날 것이다.
자처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힘주어 지장을 찍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