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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아빠 없음.

나는 아빠가 없다.
왜인지는 내가 어떻게 아랴. 전해 듣기로는, 우리 엄마가 게임 중독자 아빠 밑에 내가 커가는 것을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어,
나와 나의 친형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했단다. 물론 나는 겨우 한 살 때라, 내 기억에는 없고,

아무튼 나는 아빠가 없다. 왜인지는 내가 어떻게 아랴.
그 흔한 양육비 하나 없이 나와 내 친형을 지키겠다는 순수함 하나 만으로 우리를 키워냈던 우리 엄마를 존경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의 존경과 나의 결핍은 서로 독립된 것이라, 아빠가 없다는 결핍에 사로잡혀 이 나이를 먹은 것 같아 글을 쓴다.
이 나이라 해봤자 24살밖에 되지 않았고,
편부모 가정은 흔하디 흔해 괜히 유난 떠는 것으로 보일 여지도 있겠지만,
뭐.

나는 내가 20살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성인이 될 때까지,
내 인중에 연신 피어오르는 화농성 여드름의 근간을 알지 못하였다. 왠지 모르게 일주일 주기로
인중에서 여드름이 뻘겋게 피어올랐고, 나는 그것을 힘껏 짜내거나, 그대로 방치하다가 집 앞 연세의원피부과에 가서 항생제 약을 타 왔다.
그러나 그 여드름의 근간은 아주 간단했다.
일주일 주기로 자라나는 인중의 수염을 깎기 위해선 쉐이빙 폼이란 걸 바르고 면도를 해야 되더라. 쉐이빙 폼이라니.
나는 그걸 몰랐다. 나는 나의 주변 인물 중에서, 인중에 난 수염을 쉐이빙 폼이란 걸 사용해 면도를 하라는 걸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 인중은 억지로 짜내어진 피지구멍으로 인해 여러 연분홍색의 흉터가 생성되었고,
나는 매번 거울로 그것을 볼 때마다 얼굴도 모르는 아빠라는 놈을 상상했다. 양육비도 안 보내주면,
적어도 남자로서 태어나 불가피하게 행해야 하는 인중 면도 방법은 알려줘야 할 거 아니냐고.

뭐.

유치한 분노에 지나지 않고, 나의 역대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내본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꽤나 진지한 연애를 했다. 아니, 진지한 연애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 진지함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라, 그 진지함에 대한 나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중 하나가,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나의 여자친구에게 고백하는 일이었다. 나의 가장 큰 결핍을 이 사람에게 고백하지 않으면
이 연애의 과정이 진지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사람을 속인다는 죄책감이 들었고, 얼른 이 거대한 결핍은 고백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이러한 고백을 들은 나의 여자친구들은,
안 그래도 이상해서 물어보려고 했다고 답했다. 집에는 그 흔한 가족사진도 없고, 가족 이야기를 할 때 아빠라는 단어가 내 입에서 죽어도 안 튀어나온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아빠 없는 티가 나는 놈이라는 열등감에 휩싸였다. 씨발,

뭐.

그녀들에게 분노를 표출할 수 없으니 속으로 묵혔다.
아빠없음의 결핍은 나 혼자 만이 겪어왔던 게 아니었다. 우리 친형은 물론,
나의 엄마도, 그 흔한 양육비 하나 없이 우리 형제를 무탄 하게 키워냈다.
그래서 나는 부모의 재산, 집이나 차 같은 거를 물려받을 생각을 추호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심각한 사안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적도 없으며,
성인이 되어선 그런 것이 오히려 죄책감으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머리가 아주 조금 커가면서 알게 되었던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은 부모로부터 무언가를 물려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결혼을 할 때면 집이나 혼수 같은 걸 하나씩은 꼬박꼬박 받아오는 것이었고,
학교나 다닐라치면 부모에게로 상당한 금액을 떠안기고 맘 편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이걸 아주 늦게 알았다. 그래서 내가 중학교 때부터 해오던 알바 행위를 당연히 여겼다. 알아차렸을 땐,
당연히 심대한 괴리감의 늪으로 들어가 홀로 허우적대었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은 분노라는 원색적인 단어로 표출되었고,
부모 돈으로 일상을 이어가면서 뭐라도 되는 듯 폼 잡는 개새끼들을 그 누구보다 혐오했다. 지 아빠 차를 끌고 오면서,
마치 자신의 성과로 만들어낸 자동차 마냥 능글맞은 미소를 짓는 새끼들에게 죽빵을 두어 대 날리고 싶었다.

뭐.

실제로 죽빵 두어 대를 날리진 않았으니 내가 무전과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겠지. 어떻게 하나,
아빠 없음의 결핍 하나가 이토록 길다면 긴 글을 만들어 내었고,
난 처음으로 나의 가장 큰 결핍을 마주한 것만 같다.

헌데 그러면 뭐 어떤가.
나의 삶 중 가장 큰 결핍을 마주하여도, 글쎄, 아무렇지 않다. 괜찮다.

내 결핍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나라는 사람도 그토록 성장해왔다.

이제는 쿠팡에서 쉐이빙 폼이란 걸 매달 주문하여 인중 면도를 할 때 화농성 여드름의 여지를 막아둘 수 있는 인간이 되었고,
아빠가 없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을뿐더러 그것을 오히려 신경도 쓰지 않는 소중한 연인을 곁에 둔 인간이 되었고,
지 부모의 성과를 마치 자신의 성과인 양 착각하여 겉멋 부리고 사는 새끼들의 인생이 파멸하는 순간을 지켜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인간이 되었다.

나는 아빠가 없다.
그런데 뭐.
이제는 진정하게 말할 수 있다.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될 것이다.
뭐.

나는 오늘 이 일기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언젠가는 한 번 썼어야 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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