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가 낀 손톱. 아무래도 돼지기름 떼일 것이다. 고기집에서 일을 하면 이러한 신체 변화 쯤은 적응해야 하겠지. 그럼에도 휴일 날 사람을 만나야 할 때에는 손톱을 잘 점검하자.
-용기를 내지 않는 것도 용기인 세상에서. 그 무엇 하나 제대로 규정지을 수 없다.
-잘 쓰려고 하지 마라. 그럴수록 느끼하다.
-내 앞에 놓여 있는 스타벅스 아이쓰아메리카노. 스타벅스는 여러모로 맘에 안 드는 기업이지만 일터 주변 카페가 이곳 밖에는 없다.
-최소한 나는. 그냥 알려주면 되는 걸 가지고 상대를 비아냥 대고 업신 여기지 말자.
-누가 볼까 봐, 같은 병신 같은 것에 겁 먹은 내가 너무도 싫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기 싫어서겠지.
-이야기에는 커튼 이론과 창 이론이 있다.
나는 창을 내내 펼쳐주다가 결말에 이르러서 커튼을 닫는 버릇이 있다.
-엄마, 새벽촬영이 있는 내 일터에 놀러오신다고 말하는 것까진 고마운데요.
내가 하는 일에 여직 그다지도 큰 호기심을 지니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엔 무한히 고마운데요.
대체 내 일터에 놀러오기 한 시간 전에, 당최 왜 쏘주를 까고 계시는 겁니까.
내가 놀러 갑니까. 촬영한다고 하면 뭐 장난 같습니까. 명백히 인건비가 돌아가고 있는 현장입니다.
쏘주나 마시고 나 일하는 곳에 놀러오는 건 뭔 정신이냐며 잔소리를 좀 하니
또 취해서 사리분별이 안 되지요. 왜 가면 안 되냐는 소리. 혀가 꼬불꼬불한데도 안 취했다는 소리.
왜 이렇게 뭐라 하냐는 소리. 우리 가족이 단절되는 데에 가장 큰 파이의 지분이 누구에게 있는지
계산기가 안 두드려지십니까? 대본을 들고 촬영을 나가며, 친형의 방문을 열어
엄마 나오려고 하면 좀 막아달라는 소리를 대체 어떤 집안에서 합니까. 제발요.
정신을 왜 못 차리시는 겁니까.
당신의 아들인 두 청년은 잘 살고 있습니다. 잘 살고 있어요. 두 청년의 정서를 얼마나 파괴해야만 족하십니까.
보통 사람이면 히키코모리가 되어 알콜 중독자가 되거나 반사회적 인간이 이 집안에서 탄생했으리라
나 확신하며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헌데도 건강히 자기 돈 자기가 벌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뭐가 그리 불안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고 두 아들을 정서 장애에 이르르게 합니까.
형도 그러더군요. 구급차 소리만 들리면 심장이 두근댄다고요. 어찌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게
신기하지도 않습니다. 밥을 차려먹던 집 식탁의 흥건한 엄마의 피를 닦아야 했던 인간의 심정을 헤아려 좀 보십쇼.
나는 이제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나는 언제나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에너지를 당신에게 쏟을 바에, 다른 사람에게 쏟겠다는 게 내 판단입니다.
난 위인이 아닙니다. 나도 인간입니다. 나는 숱한 노력들을 했습니다.
난 나의 죄도 아닌, 당신의 술 때문에 저질러진 사건의 반성문을 열댓장씩 써냈습니다.
당신이 술 먹고 또 뭔 짓을 할까 두려워 같이 동침도 하고요. 힘들고 힘든 것을 정서적으로 이겨냈습니다.
너무 많이, 너무 많은 그런 시간들이 지났습니다. 난 이만 탈주하겠습니다.
나도 좀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