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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밍키와 산책을 할 때

밍키와 산책을 할 때면,

얼굴 모르는 이웃 노인이 다가와 밍키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밍키는 당연히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지, 연신 짖기만 하고,

성난 밍키가 귀여운 노인은 아이구 아이구 장단을 맞춘다.

치와와는 화가 많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할머니는 잘 계시냐고.

죽은 사람의 안부에 대답을 하는 것은,

어찌 바보 같은 짓이라고, 늘 생각한다.

 

인간의 가장 희극적인 병이자 가장 비극적인 병인 치매를,

우리 할머니는 앓았다. 참도 고질적으로 앓았다.

닭고기와 돼지고기와 김치를 섞은 정체모를 꿀꿀이죽을,

김치찌개라고 우기며 우리에게 식사를 강요했을 때부터 나는 할머니의 치매를 알아챘다.

 

할머니는 계절도 까먹고, 월도 까먹고, 요일도 까먹었지만,

밍키의 산책여부도 매번 까먹곤 하셨다.

할머니는 산책을 한 지 한 시간도 안 된 밍키에게

목줄을 채우고 밖으로 주구장창 나다니셨다.

죄없는 밍키는 하루 24번의 산책을 나가며 살도 많이 빠졌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 노인들이 밍키를 알아보는 것은,

아마 할머니의 공로일 것이다. 우리 할머니와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는 모른다만,

밍키를 대하는 태도를 보아, 꽤 살가운 대화를 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네, 잘 지내세요.

하는 나의 대답은 얼마나 또 바보 같은가.

죽은 사람이 잘 지내는지, 잘 못 지내는지 내가 알 방도가 없는데,

잘 지내신다고, 억지로 대답이 나온다.

부고소식알리미가 되는 건 불편한 걸까,

잘 지낸다고 말한 뒤, 살가운 미소로 노인을 떠나보내는 게, 내 정서에 훨씬 도움되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아마,

할머니가 요양병원서 팔다리가 묶인 채 회색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그 모습을,

내 기억에서 참도 지우고 싶은가 보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정체모를 꿀꿀이 죽을, 구역질 하지 않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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