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새해인데,
지난 해의 나를 돌아보고 올해를 다짐하는 글은 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남들과 다른 것에 줄창 목이 말라있는 사람이다. 결국 같다는 걸 알면서도 연신 시도해보는 사람이다. 그러니 오늘은 딴소리를 한다.
일곱 살인가, 여덟 살인가는 헛갈린다만, 그 근사치의 나이테를 지녔던 나는 하남시에 살고 있었다. 아파트였는데, 냉정하게는 고작 5층 건물이라 빌라라는 이름이 더욱 적합하였다.
정말이지 못사는 동네였다. 이웃 노인들은 항상 표정이 어두웠고 아저씨들은 화가 많았다. 동네의 누구누구에 관한 뒷담화가 끊이질 않았고 딱 하나 있는 주님의 교회,라는 곳에는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북적였었다. 남궁민수는 나와 비슷한 수준의, 나의 친구였는데, 걔도 교회를 다녔다. 남궁민수는 엄마한테 혼나지 않기 위해 교회를 다녔더랬다.
남궁민수는 소소한 아이템이 많았다. 축구공이라든가, 유희왕 카드, 문화상품권 같은 것들을 나에게 자랑했었다. 유난스런 남궁민수의 엄마가 사준 아이템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해 그 아이템들의 출처를 물어봤던 적이 있었는데, 답은 간단했다.
주님의 교회였다. 교회에선 초등부, 청소년부의 활달한 활동 지원을 위해, 동심의 취향을 저격하여 아이템을 뿌려댔던 것이다. 남들 다 얻고 있는 이득에서 소외됐단 생각에 억울하여, 남궁민수를 따라 주님의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다.
남궁민수와 자주 가는 놀이터가 있었다. 교회의 예배 시간이 끝나고선 항상 들려 지옥탈출 같은 놀이를 했었던 거 같다. 나와 남궁민수는 2인조로 교회를 드나들며 여럿 친구를 사귀었는데, 보통 신앙심은 없고, 대개 부모에게 끌려온 놈들이었다. 교회에서의 나와 남궁민수의 행실은 그놈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감히 여호와씨, 라고 부르며, 나중에는 호와씨, 우리 호와씨, 하며 하느님과 맞먹었으니, 신앙심이 없는 놈들에겐 우리는 웃긴 놈, 미친 놈, 또라이 같은 놈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날에도 남궁민수와 나는 교회 친구 놈들과 무리 지어 놀이터에서 지옥탈출을 했었다.
그날의 예배 시간은 유독 길었었는데, 헌금이 적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최목사는 7대 죄악 중 탐욕에 해당할 것이 분명한 지대하게 뚱뚱한 중년 남자였는데, 헌금통을 격정적으로 흔들며 화를 냈었다. 그리고선 천국과 지옥을 비교해가며 상세한 묘사를 중점으로 연장 예배를 시작했다. 우리의 신앙심을 상승시킬 셈이었던 것 같다. 올리브 나무가 가득 핀 사랑과 평화와 자유가 만개한 천국과 불구덩이에 화형 당하는 죄지은 인간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지옥을 연신 번갈아가며 묘사했던 최목사의 화술은 나의 상상력을 꽃 피웠었다.
지옥같은 예배가 끝난 후, 우리는 그날 놀이터에서 지옥탈출을 하다가 병아리를 발견했었다. 보라색 털에 놀이터 모래가 뒤엉킨 병아리의 사체였다. 초중고교 대문 앞에서 형형색색으로 염색시킨 병아리를 팔던 그때 그 시절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호기심 많은 초딩 사내놈들이 모여 그 병아리에게 할 수 있는 짓거리는 툭툭 건드려보기가 다였다. 남궁민수는 콩알만한 돌맹이를 가져와 톡톡, 병아리를 겨냥해 던졌으며, 나는 뾰족한 나뭇가지를 가져와 보라색 병아리를 이리저리 눕혔다. 보라색 병아리가 반대쪽으로 뒤집어질 때마다 무리들의 리액션이 오갔고, 오기가 생긴 남궁민수와 나는 그 죽은 병아리를 더욱 괴롭히기 시작했다. 남궁민수의 돌맹이는 점점 몸집이 커졌고, 나의 나뭇가지도 점점 격해졌었다. 남궁민수와 나는 주님의 교회에서 웃긴 미친 또라이 같은 놈,이라는 역할에 몫을 다하겠다는 듯이 움직였다.
그날 밤은, 쉽사리 잠들지 못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보라색 병아리의 터진 옆구리와 갈라진 복부에서 삐져나오는 흐물흐물한 그것들의 이미지와 더불어, 최목사의 상세한 지옥 묘사의 예배가 병치되었다. 하느님의 기준으로도, 정상적인 사회인들의 사고방식 기준에서도, 죽은 병아리의 사체를 훼손하며 희희덕거린 바보 같은 짓은 '죄'라는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헌금통을 흔들던 최목사와, 돌맹이를 던지던 남궁민수, 응고된 보라색 병아리의 핏덩어리들이 뇌에서 4K화질로 재생되어 혼란에 빠지게 하였다. 나는 지옥에 갈 것만 같았다. 지옥에 가서 불구덩이에 화형당하며 비명을 내지르는 인간이 내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기도를 했다.
여호와씨도, 호와씨도 아닌 하느님께 처음으로 기도란 것을 해보았던 것이다. 당시, 보라색 병아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니며 기도를 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편해졌는지 모른다. 어린 나의 머릿속으로는 메타뻐쓰 버금 가는 실감의 형체를 가진 하느님이 나를 포옹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1월 1일, 새해인데,
갑자기 오늘은 이 보라색 병아리 에피소드가 떠올랐던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카톡을 반복하며 하루를 지내는 와중에
병아리 사체에 장난질을 하고 난데 없는 기도를 했던 일곱 살인가 여덟 살인가 하는 소년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때 내가 하느님께 드린 기도는, 정말이지 이기적인 희망 구걸이었다. 죄는 죄대로 다 지어놓고
용서해달라니. 양심 행방의 현장이 아닐 수가 없다.
그리고
1월 1일, 오늘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도 희망 구걸에 불과한 거라고 나는 3초 남짓 생각했었다. 매년 모든 사람들에게 새해 복, 그러니까 행운이라는 게 갱신된다면 세상은 이 꼴이 될 수가 없는 거니까. 그리고 만약 내가 새해 복을 가지고 다니는 행운의 여신이라면, 그 소중한 걸 새해라는 이유로 남발하고 다니진 않았을 거다.
그러나 오늘은, 이제 얼굴 조차도 까먹은 남궁민수도 어디선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들었겠지. 하물며 나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카톡을 꽤 받았고, 보내기도 했다. 당최 설득력 없는 희망받기와 희망보내기지만,
나는 새해 복을 많이 받으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정말 올 한 해가 잘 풀릴 거 같다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카톡을 받은 사람들도 올 한 해가 잘 풀리길, 희망이란 이름으로 바라게 되는 것이다.
희망은 원래 설득력이 없다.
할 수 있는 게 그것 뿐이니 품어보기라도 하는 것이다. 정말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 기도 드리던 소년처럼
새해 복을 지녔다고 생각하고 2023년을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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