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후세계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일흔두 살의 당신은 알츠하이머가 찾아왔습니다. 치매라는 간단한 단어로 정립되는 지병은 유년시절의 나를 무지도 괴롭혔습니다. 사춘기의 예민함과 당신의 치매가 부닥친 것입니다. 당신의 기억은 3분을 채 못 갔습니다. 날짜 개념을 중시한 당신은 하루 내내 나에게 질문이란 것을 아주 폭력적으로 행사하였습니다.
오늘이 몇 월 달인지, 오늘이 며칠인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 밥은 먹었는지, 엄마는 어디 갔는지, 형은 어디 갔는지,
각각의 질문들을 돌림노래 하듯 반복하며 24시간을 꽉꽉 채웠습니다. 나는 그것을 들으며 정신착란 상태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신에게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고, 씨발! 진짜 병신 아니야! 같은, 해선 안 될 욕설을 당신을 겨냥해한 적도 있습니다. 어쩔 때는 컴퓨터 마우스나 EBS문제집을 있는 힘껏 집어던지기도 하였으며 분노가 과잉된 날에는 당신의 어깨를 밀쳐 넘어뜨리기도 하였고, 당신은 할미한테 못 하는 짓이 없다며 거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그럴 때면 나에게 잘 익은 김치나 곶감 같은 것을 던져 내 옷이 얼룩졌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방은 문고리가 고장 나 문을 잠그지 못하였었고, 쪼그려 앉아 혹 당신이 들어올까 등으로 방문을 막으며,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한 대 쥐어박을 심산으로 방문을 필사적으로 열기를 시도하였으며 나는 그 진동을 온몸으로 견뎌야만 했습니다. 기진맥진해진 당신은 종종 집 전화기를 들어 떨어져 지내는 두 삼촌에게 전화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두 아들에게, 나는 지금 이 집안에서 몹쓸 짓을 당하고 있으며, 제발 나 좀 데리고 가라는 말을 비명 긁듯 하였습니다. 두 삼촌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곤 사나운 목소리로 나에게 할머니 좀 잘 해 드리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부양의 의무를 지기 싫어 내던지듯 우리 집에 할머니를 모셔놓곤 한다는 말이 그따구였습니다. 어린 머리론 삼촌이 무서워 수긍했던 것이 많이 후회됩니다. 지금이었으면 쌍욕을 24분 동안은 할 텐데 말이죠.
당신이 사라졌습니다. 온 집안은 난리가 났습니다. 하루아침에 당신은 실종되었습니다. 나는 무서웠습니다.
나는 당신이 새벽 3시 23분쯤 도어락을 열고 나가는 소리를 분명 적확하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도 당신을 잡으러 나가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새벽에 탈출을 감행하다가 나에게 붙잡힌 전력이 12번쯤 되었습니다. 당신의 고향인 경상남도 통영으로 향하기 위해 집 밖을 나섰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나는 그 새벽에 당신이 탈출하는 도어락 소리를 듣고, 이불을 정수리까지 싸맸습니다. 그리고 숙면에 이르렀습니다.
당신은 집 근처,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횡단보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추워 벌벌 떨면서, 그리고 안구에 야구공만 한 시퍼런 멍이 들어서였습니다. CCTV를 확보해 동영상을 보니,
당신은 취객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에게 다가갔습니다. 당신은 이것저것 질문을 하였습니다. 남성은 질문에 맞춰 대답을 해주다가 이내 싫증이 난 듯 돌아섰습니다. 당신은 그 남성의 어깨를 잡고 인상을 구겼습니다. 실랑이는 그렇게 벌어졌습니다. 경찰은 신원 확인이 불가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안구를 퍼렇게 만든 장본인을 잡아다가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탈출을 방치한 이 죄인이 그런 마음을 가져도 될까 싶었지만, 그날 이후로 며칠 밤을 자지 못하였습니다. 그 씨발놈에게 되갚아줘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점점 소녀가 되어갔습니다. 늙은 육체의 괄약근은 허약해져 종종 이불에 실수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신은 음식물 쓰레기를 17층 되는 우리 집에서 베란다 창 밖으로 투척하기도 하였고, 음식물 쓰레기를 뒤집어쓴 16층 아줌마가 우리 집에 올라와 노발대발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당신은 더 이상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홀로 중얼거리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를 잊는 당신은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은 누구인지 까지 잊어버린 모습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고향인 경상남도 통영에 대한 집착이 심해져 갔고, 경기도 용인시인 우리 집을 통영으로 오해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신은 알몸으로 거실을 누비기도 하였고, 그 나체의 상태로 추운 베란다로 나가 벌벌 떨면서도, 이제 그만 들어오라는 나의 말을 그토록 무시하였습니다. 당신의 방과 당신의 몸에선, 복잡하고도 미묘한 냄새, 그렇지만 불쾌한 것이었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냄새를 뿜어냈습니다. 당신을 위해 구매한 전동 안마기나 전기장판이나 갈아 끼우는 틀니 같은 것들이 점점 쓸모 없어져 갔습니다. 나는 그 고등학생 때, 집에 있는 것이 지옥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심야영화를 즐겨봤으며, 친구들과 밤늦게 까지 노상을 깔아 둔 채 술 먹는 시간을 즐거워했습니다. 당신이 차린 맛있는 집밥은 더 이상 볼 수 없었고, 당신은 소꿉놀이하듯 요리를 하여 괴상한 음식을 탄생시켰으며, 종종 개사료를 프라이팬에 볶는 탓에 온 집안에 개사료 썩은 냄새가 배기게도 하였습니다. 작은 체구지만 당신의 영향력은 거대하였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게 힘들었습니다. 당신을 요양원에 까지 보내는 데에, 정말로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나는 사후세계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후세계가 정말로 있다면, 그곳의 인간은 어느 정도 전지전능은 갖출 것이라 사료됩니다. 이승에 있었던 모든 기억들을 되짚어 볼 수도 있겠지요. 나는 겁이 납니다. 내가 당신에게 막대했던 것들, 내가 당신에게 저지른 죄를 당신이 알게 될까 두렵습니다. 당신에게 해선 안 될 욕설을 했던 것과, 어깨를 밀쳐 넘어뜨린 것과, 당신의 탈출을 방치했던 것을 당신이 알게 되면,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생각이 나에 대한 혐오여도 두렵고, 용서의 방향일시 더욱 두렵습니다. 것보다 더 두려운 건,
혹여 당신이 죄책감을 가질까 하는 것입니다. 오직 치매라는 간단한 지병 때문에 벌어진, 당신의 실수들. 그것에 자책감을 가지며 괴로워할까 걱정됩니다. 당신이 나에게 고통 준 것을 알게 되는 게 싫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후세계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똥과 당신의 음식물 쓰레기와 당신의 개사료 썩은 냄새를, 그냥 없었던 일로 치부해버리고 싶고, 애써 잊으려 노력도 하고 있는데, 기억을 되찾은 당신이 모든 것을 제대로 보고, 듣고, 느끼게 되면 무슨 소용일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지만.
나는 사후세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용서를 한 번은 빌어보고 싶습니다. 한 번은 더, 치매라는 쓰레기 같은 병에 시달리지 않는 당신의 눈을 느끼고 싶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주었던 사랑을 단 한 번은 느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단 한 번만은,
당신의 안구를 퍼렇게 만든 그 씨발 놈을 데려다가, 두들겨 패주는 모습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 쾌감으로 당신의 똥과 음식물 쓰레기, 개사료 썩은 냄새를 날려버리고 싶습니다.
사후세계가 있다면요,
치매에 걸린 후의 당신을 당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소 뻔뻔한 태도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태도를 겸비해주시길 간곡히 바라겠습니다. 죄책감이나 자책감 같은 것들을 짓이기시고 나를 책망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주십시오. 모든 게 괜찮습니다. 모든 게 고맙습니다. 모든 게 죄송합니다. 다소 뻔뻔하게, 태연한 태도로 나를 기다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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