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볼 일도 없는데,
오늘도 집에 와서 선두로 한 짓이 노트북 켜기였던 것이다.
켜서 뭘 할 건데. 하는 물음에 대답도 없이 LG그램 노트북 지문인식기에 검지손가락을 얹고는
내가 구독해놓은 블로그를 살펴보며, 오늘은 새 글이 올라왔는지를 기대한다.
나는 써야만 한다.
그런 강박이 나에게는 내내 있다. 그게 희곡이든 시나리오든 일기든
뭐 하나는 남겨놓고 자야 절망은 희미해지고 희망이 희미하게나마 저 멀리 보이며
숙면에 임하는 나의 마음의 중량을 줄이게 된다.
노트북을 켜버렸으니 나는 이런 거라도 써야 하는 인간이 되었다.
희곡도, 시나리오도, 정성 들인 일기도 아니지만
노트북을 켠 김에 삶에다가 지문을 찍듯 이런 거라도 써야 한단 말이다.
요즈음은 내가 쓴 대본으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돈도 못 벌고(실상 돈을 잃었다),
알바와 병행하느라 늘상 힘들다만,
내 대본을 연기해주는 배우지망생들의 몸부림을 보며
내 대본에 생명력이 주사되어 꿈틀거리는 것이, 요즈음엔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나에겐 재능이 아주 없지 않다는 것을 생각했다.
나에겐 상황을 다루는 재능이 있다, 하는 자신감을 얻곤
조만간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하나 더 쓰자.
이 자신감은 증거미비가 아니오라
피땀 흘려 구축한 바 있는 확증이기에 자신감이라 자신감 있게 작명한다.
그리고 노트북을 켠 김에 영화를 한 편 보고 자야 하겠다. 나는 그런 인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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