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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밀크씨슬, 밀크시슬, 밀크시쓸

오전 11시로 출근 시간이 계약된 에코의카페로 향하기 위해선 오전 9시 반 쯤은 기상하여

10시 20분에는 810번 마을버스에 탑승해야만 한다. 교통카드 기능이 활성화 된 갤럭시A51 스마트폰의 뒷면을

버스 단말기에 고스란히 가져가면, 승차입니다,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겠지. 내가 좋아하는 버스 오른쪽 맨앞 창가 자리,

노인에게 자리양보 눈치에 적나라히 노출되는 그 앞자리에 착석하여 나는 생각한다.

아, 매일 오전에 꼭 삼키고자 다짐하였던 밀크씨슬을, 출근준비란 분주함을 핑계로 건망이 들어 섭취하지 못하였구나. 

어제는 밀크씨슬을 먹었었나? 기억이 안 나. 이렇듯 사소한 약속이 삐끗나면, 여전히 무계획적 성향의 나 자신을 책하는 시간을 갖는다.

허나 오늘은 자학을 거두어 보았다. 솔직히 말해보자. 밀크씨슬을 꾸준히 먹었던 시기가 나의 과거엔 분명 있었는데,

그때의 나는 그 밀크씨슬의 대단한 효능을 맛보았었나. 간은 피로와 직결되어 있다는 광고 문구의 텍스트를

내 온몸으로 체감을 했었느냔 말이다. 느껴본 적이 없다. 밀크씨슬은 정말 효능이란 게 존재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에코의카페서 여섯 시간의 근무를 마치고 나면, 오후 6시로 출근 시간이 계약된 접시고기 죽전점으로 향해야 한다.

미니스톱에 들러 참치마요삼각김밥과 김치사발면을 위라는 장기로 투입시키고 접시에 담긴 돼지특수부위를 서빙하고 있자면

나의 직업을 의심하게 된다. 휴학이란 이름의 잠정 자퇴를 해버렸으니 대학생은 아닐 거고

아마 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지망생 즈음 될 턴데 내 하루의 할당 부분이 글쓰는 행위가 아닌 서빙 행위에 몰두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한다.

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나는 알바를 하는 거야. 그래서 하는 거야. 이건 내 인생의 주가 아니야.

라고 위로를 겸해보는 오후 6시 출근 남자의 알바 행위는 과연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을까. 알바는 그저 나의 시간과 노동을 돈과 맞바꾸는 행위겠지. 피로와 간처럼, 완연히 직결되어있는 노력은 아닐 거라고. 의미가 없을 거라고.

11시 퇴근하는 810번 마을버스에선, 갤럭시버즈2를 달팽이관에 쑤셔넣곤 3월 25일 공연 예정되어있는, 내가 극본으로 참여한 공연 팀의 네이버 밴드에 접속하여 더클래스 Z홀 연습실에서 촬영하였던 장면연습 동영상을 시청한다. 오른쪽 맨앞 창가자리에 착석한 나의 입꼬리는 씰룩대고 이미 보았던 동영상에 세 번 더 재생버튼을 터치한다. 공연준비는 역시나 즐거운 거구나. 음절음절을 곱씹고자 하면, 2022년이 당도한 시기에 연극 같은 시대착오적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는 회의감이 동시에 밀려와 모순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저 오른쪽 창가 밖에선 메따뻐스와 NFT와 크립토아트 같은 것들을 떠들고 있는데, 이 아날로그하디 아날로그한 연극이란 것에 알바 행위를 제한 모든 나의 시간과 애정과 돈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애써 그 현실을 외면하여 본다. 오른쪽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왼쪽의 세계가 있는 거겠지. 하며 면상을 좌로 돌려보아도 구린 한숨이 나오는 건 조건반사인 건가. 연극 같은 것에 시간과 애정과 돈을 쏟고 있는 게, 당최 의미가 있는 걸까.

2903동 1703호의 집으로 돌아와 장장 12시간 알바로 묵은 때를 샤워기로 무찌른다. 작가지망생인 주제에 24시간의 반지름을 엉뚱한 곳에 쏟았다는 죄책감이 나를 LG그램 노트북 앞에 앉아 있게 만들고, 이렇게 오늘 하루에 관한 한 편의 일기를 쓰게 만든다. 써야만 한다는 강박이 내내 자리잡고 있어 이따위 일기라도 써야 마음의 중량을 1g이라도 던 채 숙면에 임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었단 말이다. 피로와 간처럼, 이 일기가 나의 꿈과 직결된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를 바라보지만, 그건 모르는 일임에 분명하다. 의미가 있다고 확언하기보단 의미를 갈망하고 있는 형국에 나는 놓여있다는 것이다.

알바와, 연극과, 이러한 일기.

알바와 연극과 이러한 일기에 투여하는 나의 노력이 나의 꿈이라는 것과 맞닿아 있을까. 알바와 연극과 이러한 일기는 과연 의미라는 걸 지니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 오전, 출근준비란 분주함에 건망이 들어 밀크씨슬 섭취를 깜빡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때 늦은 밀크씨슬을 이 밤에 꼴깍 삼켜본다. 

밀크씨슬의 의미 유무를 저울질하기 보단, 뭐, 의미가 있을 거야, 하는 희망을 품고 밀크씨슬을 삼켜보는 것이다. 이 작디 작은 초록색 알약 하나가 나의 피로를 개선해주리라는 희망을 지니고,

알바도, 연극도, 이러한 일기를 쓰는 행위도, 여하간 열심히, 잘, 지속하여 나가자.

의미가 있어, 하는 확언은 좀 그렇다지만, 의미가 있을 거야, 하는 희망품기는 어느 인간에게나 합법이니까. 희망은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이란 것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써놓고 보니 제약회사가 직접 명시한 밀크씨슬의 표기가

밀크씨슬인지, 밀크시슬인지, 밀크시쓸인지 헛갈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밀크씨슬의 적확한 표기를 모르고 먹는다고 해서 밀크씨슬의 효능과 의미가 변하진 않을 거다. 지속해서 밀크씨슬을 삼키고, 알바하고, 연극하고, 일기를 써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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