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자 맘먹은 사람은
참으로 맘 편하게, 자신의 유서에다가
현재를 즐겨라.
라는 말을 써놓을 거야.
2023년에는 그 유서가 스티브좝스의 아이폰14에 저장될 거고,
여하간, 현재를 즐겨라.
그건 그저 그 사람에게 내일이 없으니까
맘 편하게 할 수 있는 말인데,
죽음을 앞두었다는 이유로 현재와 미래라는 개념을 깨우친 척
그러니까 있어보이는 척을 하는 걸로 치부하면 너무 사자명예훼손일까.
아닌 게 아닐 거다. 나는 죽고자 맘먹은 적이 없고,
그래서 내일이 있다. 미래로 생각되는 게 자꾸만 현재가 되어
분간이 애매모호하지만, 내일의 나는 웬만하면 살아있을 걸.
그럼에 현재를 즐겨라. 라는 말을 무책임하게 지껄일 순 없는 입장이다.
피 없는 자유가 수학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것처럼,
즐거움과 고통도 연신 저울질해야 하는 현재에 놓여있는데
세상 깨우친 척 하는 허세병 환자 유서의 말을 그대로 실천했다간
어이쿠야, 고통의 대서양으로 다이빙을 할 처지에 놓일걸.
내가 죽음을 앞두었을 땐, 허세를 좀 벗고 감동 죽이더라도 나의 유서에는
그냥 평소대로 살다가
한 한 달에 두 번쯤은 날 생각해 봐.
좁은 땅덩어리 이슈로 아마 화장이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한데
일원론적 관점에서, 나는 기능의 수행을 부재당한
너의 아이폰14와 같은 놈이야.
그저 까맣기만 하고, 전화를 할 수도,
카톡을 할 수도 없이 잠들어 있어.
소프트웨어업데이트라는 변화는 더 이상 내겐 없고
뼛가루로 고착화되어 있어. 유튜브뮤직으로 째즈음악을 듣고 싶은데
젠장할. 내겐 한 달 6,900원을 결제할 통장도 없이 사망신고가 되었잖아.
너의 빠떼리가 몇 퍼센트인지 나는 잘 모른다만
내게 1%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의 여지가 남겨진다면
그 퍼센티지를 몽땅 너를 부러워하는 시간으로 보낼 것 같다.
카톡으로 타인과 교류를 하고, 째즈음악도 종종 듣고
소프트웨어업데이트를 할 수 있는 변화의 여지가 항시 있으니까.
여튼 변화는 좋은 거래. 내가 말하진 않았고
나보다 더 많이 살고 책을 더 많이 읽은, 뭐 위대하다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랬어.
근데 그 위대한 사람들도 다 죽었어.
한 달에 두 번은 나를 생각해.
내가 할 수 없는 걸 너는 당연하게도 하고 있고
위대하다고 불리는 사람들도 못하는 걸 너는 당근 하고 있고
인류 역사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소수의 특권을 너는 누리고 있다.
스티브좝스도 못하는 걸 하고 있는 네가
한 달에 두 번은 나를 생각하면서
카톡을 하고 음악을 듣고, 변화하며 살아갔음 좋겠다.
나는 너를 시기질투하고 있을 테니
최대한 늦고 건강하게
나의 삐짐을 뽀뽀 백 번 애교로 풀어줘.

'곰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을 감으면. (0) | 2023.06.17 |
---|---|
삼겹살이 생각날 땐 왜 이다지도 혼자인 걸까 (0) | 2023.06.15 |
제목은 글을 다 쓴 후에 써보자 (0) | 2023.06.13 |
오늘은 쉬는 날. (0) | 2023.06.06 |
나 연극 한다 (1) | 2023.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