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구인이 존경스러웠다. 지구인뿐만 아니라
지구와 또이또이한 문명 체제를 지닌 외계 행성의
이름 모를 생명체들에게도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
새벽이란 놈이 내 후두부에 돌려차기를 어찌 많이 하는지
두통이란 게 머리통을 애워싸고
뽀너스 기프트로 우울이란 것까지 심어지면
그간 많이도 증식된 과거가 험한 몸짓으로 등장한다.
만났던 사람들.
전주전집 알바 형님 정민이 형과
아마추어 연극 극단 사기꾼 대표 형우 형과
철없는 연애의 종지부를 함께 도달하였던 혜연이.
뜬금도 없게 생각나는 얼굴들과
떠나보낸 사람들.
21년 만에 뻔뻔한 면상으로 등장한 우리 아빠와
불건강 연애의 종지부를 함께 도달하였던 헌팅포차 지연누나와
5년 우정을 단 3분만에 단절하여 절교선언한 현도.
가소로워 보였던 지난 날의 행적들이
이제 와 막 후회가 된다.
병신 같이 예술병에 빠져서 대학 같은 거 안 가도 된다고 했던 나와
누가 봐도 안 되는 걸 해보겠다고 깝쳤던 나의 객기와
누가 봐도 되는 걸 안 된다며 내빼던 나의 뺀질뺀질함.
좋았던 일들도 불쑥 텨나와
잠깐의 휴식 시간.
인간자격증을 취득한 성취의 대학합격과
내가 4번 타자로 출전한 전국소년체전 야구대회 우승 트로피와
내가 쓴 대본이 어디어디에서 선정되어 어디어디에서 공연되었던 귀중했던 경험.
그걸 가로막듯 재등장하는
그리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기억.
시도때도 없는 엄마의 자살기도와
치매로 정신 나간 할머니의 성실한 추태와
그 기억을 먹고 자란 지금 새벽,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하찮게 누워 우울과 씨름하고 있는 나.
술이 먹고 싶었다.
나보다 더 오래 산 사람들과
나보다 더 오래 살진 않았지만 나보다 더 많은 고통을 심은 사람들은
당최 어떻게 매일 밤 잠들고
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걸까.
야채곱창, 삼겹살, 찜닭 등의
탁월한 안주가 생각났고 배달의 민족이라는
어플이 나의 갤럭시스마트폰엔 당당하게 설치되어있지만
내일이 걱정된다. 책이나 읽자. 조악한 책장을 살펴보다가
9월 1일 내 생일 날 재영이 누나가 선물해준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라는 책을 펼치고
텍스트로 표기된 세계가 내 상상을 잔뜩 채워주며
이제야 딴 생각을 거두게 되고는 숙면에 임할 수 있는
마음의 셋업을 마치게 된다.
그래서 나보다 덜 살았고,
나보다 덜 고통 심은 이가 있다면
이러한 새벽에는
술 먹고 지금보다 더 추한 모습으로 잠들지 말고
얌전히 책이나 읽으며
잠이나 자고 찾아온 아침을
만끽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이걸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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