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다. 그게 시간이든 돈이든
희생이라 쓰인 깃발을 들고 그렇게 열심히 흔들어댔다. 제 아무리 나 좋자고 부리는
이타심이라지만, 나의 이타심 행위에 무반응을 펼치거나
내 뒤통수에 빽스핀블로우를 꽂아버리는, 해도 해도 너무한 그런 일상을 살고 있다.
기대를,
그래, 기대를 해서 그렇다. 사람은 왜 기대를 하게 설계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희생이란 말이 어려워진다. 난해해진다.
복잡하다. 짜증이 나서 맥주를 또 찾는다. 맥주는 취함이라는 기대에 그대로 부응해 준다.
희생이란 말을 앞장 세워 심심한 손해에 쑤셔지듯 살아가는데
이런 나의 입장을 단 영 쩜 일초만 생각했어도
나오지 않을 사람의 행동들이
계속해서 포착된다. 이를 바득바득 갈게 되는데
상황이 민망해질까 염려하여 마냥 또 화를 낼 순 없게 되고
자꾸만 하수구웃음만 짓게 된다.
그러다 혼자가 되면
혼자라서 어디 내뱉지도 못할 화들이
빵빵하게 채워져 부들대는 상황에 놓여 내용은 악이나 형식은 한숨으로 내뱉게 된다.
근력운동이 좋아졌다. 욘석도 기대에 부응해 준다.
그리고 반성도 하자.
나 또한
남이 나를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였을 때
그 손해에 데일밴드 하나 붙여주는 정성을 보여주지 못하였던
그런 과거가 분명히 있을 거다. 그러니 앞으로는
나를 위한 손해에 후시딘 한 틱만큼은 보답을 해주자는 생각을 해보면서
지금 내 희생 아래 희희죽대는 이들을 마음껏 원망하자.
딱 서른 살 전까지만 이런 개호구 같은 희생을 자처할 거다.
그게 돌아오지 않으면,
그걸 돌려주지 않은 새끼들은 다신 얼굴 마주하지 않을 거다.
딱 서른 전까지만. 진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