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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반사회적 독백

역사 책 같은 걸 보면

그놈의 투표권에 항의를 쇄도하다 죽은 이들이 많고

그 사람들은 위인이란 칭송을 받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나이가 어리든 성별이 xx든 xy든 천하든 귀하든

당연하게 부여받아야 할 권리를 박탈한 이들에게

용감하게도 맞서싸운 거잖아.

 

선택권을 달라는 거.

그건 당연한 거잖아. 이제 와 여자들한테 투표권을 주면 안 된다, 같은 소리를 하는 놈들에게

우리는 병신이라 이름 붙이잖아.

 

근데 그런 세상에서 출산은 계속된다고.

곧장 10개월 뒤 태어날 아가에게 물어나 봤나. 너 태어나고 싶냐고.

가장 근간의 기본권인 태어날래 말래라는 선택권을 박탈 당하고

태어난 인간들이 60억이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러니 죄책감에 아이를 낳아야만 하는 이유를 좀좀따리 만들어.

노후의 외로움?

뒷방 늙은이가 될까 두려워 자신과 가장 유사한 생명을 이 세상에 탄생시킨다는 싸이코의 생각이

이리 당연하게도 굴러다닌다고?

대를 이어야 한다는 죽은 말에는 어떤 확고한 근거도 없고

세상은 이미 아이를 낳은 이들이 아이를 낳아야만 진정한 인간이라는

구축망을 형성해 놓고는

아이를 아직 안 낳았거나 낳지 않을 이들을

인간다움이 아니라는 변방으로 내몰며 왕따 취급을 해보는 거지.

국가 유지, 발전의 차원에서 애를 낳아야 한다는 말은 너무도 병신 같아서 할 말이 없다.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그 누구는 출산하기 전에 이 아이를 기필코 불행하게 만드리라 생각하고

애를 낳는 줄 아나?

대다수가 그런 확신에 차서 10개월을 기다릴 텐데

기억해야 한다. 세상은 어떤 이유에서든 고아원이 설립되어있다.

당장 자신의 행복도 가늠할 줄 모르면서

애의 행복은 어찌 확신을 하는 거지?

것도 그냥 미래 불확실에 대한 두려움에 반사적으로 나오는 건방짐이란 걸 알아야 한다.

 

너는 살면서 행복하지 않았냐고?

행복한 적, 있지. 헌데 나는 불행하기에 행복했다.

행복이란 불행의 정반대 감정이 아니라

불행이란 감정을 잠시 마취시켜 놓는 마약에 불과하니까.

불행이 없다면 행복도 없는데

너도 행복했으니까 애도 행복을 만들어주면 안 되냐는 말은

너무 잔인한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

 

축복 받은 삶이란다.

종교적 자위는 그만하자. 모두가 축복 받은 삶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저기 저 구체적 고통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이들을 모르쇠 하고 있다.

정말 모두가 축복 받았다면

원으로 둘러 앉아 불쌍한 인간을 써클 중심부에 놓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부를 필요도 없었다.

 

나는 항의 중이다.

투표권처럼 당연한 걸 당연하게 부여받지 못했기에

항의라도 해보는 거다. 애를 대체 왜 낳는 거냐.

 

그리고 언젠간 이런 나의 투쟁이 끝나기를 소망한다.

애를 낳고 도란도란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아무래도 되었으면 좋겠다.

그 어떤 논리적인 말이 아니더라도

설득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