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가 누군지는 잘 모른다. 평서문으로 글을 쓰게 되면 어찌 불편한 감각이 나는 있다. 구어체로 쓰면, 누구한테 말한다고 상정하고 글을 쓰면 좀 나아서 너에게 말을 하는 거다. 내가 극작인이어서 구어체가 편하다는 구태의연한 말은 하기가 싫다.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인 거다.
뻔한 안부 인사를 전한다. 잘 지내고 있니. 이 뻔한 말을 너에게 할 수 있다는 게 또 특별하니까.
너의 안부를 물어본 지 몇 초 됐다고, 급격하게 나의 안부를 너에게 전하고 싶다.
나는 다음 주부터 주5일 330만 원 고기집의 세계로 들어간다. 고기집 알바가 시급이 쎄걸랑. 해서 다음 주가 되면 몇 달간 사람을 잘 못 만날 것 같아서, 요즈음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데에 나의 시간과 돈의 할당 지분을 쏟고 있다. 어제는 서울예대 후배(후배란 말이 너무 어색하다. 아니, 반대로 내가 선배인 게 어색한 건가) 김완수를 만나기 위해 건대입구란 곳을 처음 가 봤다. 애견카페에 가면 세상엔 이다지도 귀여운 강아지들이 많구나, 체감하는 것처럼, 서울에 가면 예쁜 여자들이 이다지도 많구나, 생각하게 되더라. 김완수는 꽤 친해지고 싶던 배우였는데 말이 잘 통해 좋았다. 신나서 쏘주를 너무 빨리 마신 탓에 꽤 취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왜 술을 마시면 그리 연초 담배가 피우고 싶을까. 어제도 대박포차 근처 CU편의점에 들러 LBS옐로우3mg와 제일 싼 라이터(사용하면 엄지 지문에 자국을 남기는, 그 라이터)를 급히 구입하여 연초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그렇게 또 내 방에는 라이터와 담뱃갑이 쌓여가네. 김완수와의 대화는 충분히 즐거웠다. 막차를 타러 가는 것에 상당한 아쉬움을 뽐낼 정도로.
다음 주에는 내가 속한 창작집단의 MT라는 명목 하에 안동으로 1박 2일을 떠난다. 별이 예쁠 것이고, 공기가 좋을 것이다. 가서 심호흡을 많이 해내고 올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시골 청년이 어울리는 성향을 가진 것 같은데, 꿈이라는 저주에 걸려 서울과 가깝게 지내야 한다는 강박이 늘 있다. 서울에서만 뭔가 활발한 게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서울에서 주로 활발한 게 이루어지니까. 이 닭장 같은 아파트들과 양복쟁이들을 보면 기분이 안 좋다.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할까, 같은 생각을 해낸다. 그것들과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 살고 싶다. 해서 조만간 이사를 가야 할 지역을 잘 선정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기획된 연극 프로젝트 탓에 요즘 수원시 팔달구에 자주 방문하게 되는데, 팔달구를 후보에 꼽고 있다. 노인 밀집 지역이라 물가가 싸고 시장이 있고 교통의 요지라 서울을 오가기가 편하며 정감 있는 분위기에, 문화재산이 많아 문화활동을 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선생님이 사시는 수지구도 후보로 꼽았다. 탄천 자전거 도로가 인접해 있어 러닝과 자전거 타기에 좋을 것이고 강이 흐르고 있기에 나의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줄 것이다. 수지도서관이라는 뽀대 나는 도서관도 있고, 무엇보다 선생님과 가까이 지내면 진행되고 있는 유튜브 시트콤 제작에 굳이 먼 거리를 왔다 갔다를 안 하여도 된다. 그러나 수지구는 꽤나 학구열이 쎈 지역에 속하여서 학원이 밀집해 있다. 사교육의 방대함이 체감될 정도로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중고딩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또 기분이 안 좋아진다.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할까. 해서 아마 수원시로 이사를 가지 않을까 싶다. 나의 원룸은 나의 취향으로 가득할 것이다. 너가 놀러 온다면 내 펩시제로콜라 한 잔 따라주리라.
나의 반려견 치와와 밍키도 잘 지낸다. 나이가 들어 쇠약해진 모습이 눈에 띄긴 하지만 여전히 산책과 간식에 꼬리를 흔들어댄다. 몸이 힘들어 풀 죽어 있는 모습으로 내내 누워 있다가 그래도 그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면 잠깐이나마 기분이 좋아진다. 밍키를 데리고 여행을 한 번 떠나 밍키에게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지만, 자가용 차는 무슨 운전면허도 없는 나는 그 동행이 쉽지 않겠지. 밍키가 힘들어 할 것 같기도 하고. 너가 운전을 할 수 있다면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최근엔 다이어트를 성공해냈다. 족히 85kg에서 75kg으로, 무려 10kg을 감량했다. 프로덕션에 배우로 어쩌다 참여하게 되어서 급히 살을 뺀 것인데, 살을 빼길 잘했다. 턱선이 살아나서 요즘엔 거울 보는 맛이 있다. 술을 좋아라 하는 탓에 살 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1일 1식으로 술을 쳐 먹어대니 다행히도 잘 빠지더라. 공복 러닝과 푸쉬업도 곁들였다. 해서 요즘은 요요를 경계하는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나는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타입은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뭐 돈도 없거니와 운전면허도 없고 경제적인 성취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블로그에는 자기 연민 그득한 포스팅들이 가득하고, 원나잇 하려다가 모텔비가 없어 쓸쓸한 첫차를 기다리는 다큐식 에피소드도 써버렸으니까. 그런 놈이니까 연애는 어느 정도 포기를 하고 일단 살아가는 게 맞을 것 같다. 이 혼자 지내는 시간을 잘 느껴보자는 마음가짐이다. 책을 좀 더, 영화를 좀 더, 공연을 좀 더 보자는 다짐과 글을 좀 더, 쓰자는 다짐이 현재 나에게는 있다.
또 뻔하게 말해 본다. 잘 지낸다는 말로 장식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잘 지내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잘 지낸다. 이 뻔한 말을 너에게 할 수 있다는 게 또 특별하니까.
많은 얘기를 더 하고 싶지만. 그건 너가 구체적인 외면과 내면을 지닌 너가 되었을 때, 그때 더 해보자. 그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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