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퇴근 길을 책임져주었던 갤럭시 버즈 라이브의 오른쪽 유닛을 잃어버렸다.
강산에의 '거꾸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오른쪽 귀로는 이제 들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오른쪽 귀가 헛하다. 좌로만 쟁쟁이는 강산에의 연어들은 전혀 힘차 들리우지 않는다.
또 한 번 잃어버렸다. 23년 6개월 간을 살면서 참도 많은 것을 잃어버려왔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 어느 보이지 않는 감정이든
잃어버려왔는데, 현재의 내가 망연자실하지 않는 건,
다름이 아니라 그 잃어버린 것을 잊어버렸고,
잃어버린 것을 잊어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잃어버린 것을 충족하게 채워줄 무언가가 나에게로 지극히 찾아와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수많은 물건들을 잃어버려 왔는데, 가령
1년 간 글을 편히 쓰게 도와주었던 삼성 노트북의 충전기를 잃어버렸어서,
그저 한낱 골동품이 된 바람에 서랍장에 쳐박아놨었는데,
현재의 내 앞에는 120만 원 상당의 LG그램 노트북이 있지 아니한가.
수많은 여자친구들을 사귀어왔었는데,
이제는 술 따위의 것들을 쳐먹고 새벽 3시 20분 경에 카톡을 날리는 병신같은 짓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그러한 이유는 역시나 그 따위의 짓거리를 하지 않아도
사랑이란 가치를 충족시켜주는 사랑스런 사람이 나를 파수꾼처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해본다.
잃고 잊을 것이 아니라, 잊고 잃을 수 있었다면
좀 더 탁월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러자면 상처라던가, 미련이라던가, 절망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나의 하루와 일상을 좀먹지 않을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잊고 잃었다면, 적어도 3시 20분 경 전여친에게 카톡을 날리는 병신같은 짓거리는 나의 흑역사로 남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도 만약에, 를 상정한 나의 알량한 상상력일뿐이고
나에게서 잊고 잃은 건 거의 없었다.
잊고 잃은 것 또한, 언젠가로 불쑥 찾아와
나에게 적절한 상실감과 미련을 안겨다 주었다.
강산에의 노래를 한 번 더 언급해야 하겠다. 제목이 너무도 길어 경제적이지 않지만 필요한 시점이다.
강산에의 '거꾸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
젠장할 왼쪽 귀로만 들리워 헛헛하지만
잃은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경제적 여건이 충족 된다면 갤럭시 버즈를 재구매 할 것이고,
버즈 라이브는 이미 경험해 봤으니 갤럭시 버즈 프로라던가 하는 것을 구매할 확률이 극히 높다.
그러자면 전보다 더욱 풍부하게 들리는 강산에의 목소리로 만족감을 얻곤,
재차 잃어버린 것을 잊어버리는 상황에 도달할 것이다.
잃어버린 것을 괴로워하고, 망연자실하는 동시에,
얼른 그 빈곳을 차지해줄 무언가를 채워야 하겠다.
그럴수록 과거보단 현재가 더욱 고퀄리티가 되어갔다.
23년 6개월 간, 잃어버린 것을 잊어버릴 수 있었던 건,
더이상 새벽 3시 20분에 알콜 냄새 그득한 카톡을 보내지 않을 수 있는 건,
현재의 내가 갖고있는 것들이 더욱 고도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4)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 강산에 (작사: 강산에. 작곡: 강산에. 1998년 발매된 앨범 강산에 4집에 수록.)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