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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함께해야 하는 날들

설날과 추석 때 나는 외로웠다.

왕래하는 친척이 없어 집에만 머물렀다. 우리 친척은 늙은 부모의 부양 문제와 온갖 돈 문제로 사이가 틀어진 지 오래되었다. 

얼굴을 보면 서로 싸우게 될 것이 다반사이므로 마주하는 것을 지레 회피해버린 것이다.

설날과 추석 때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어디론가 내려가버린 사람들로 세상은 고요했다. KBS뉴스에서 떠드는 설날교통체증이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 이토록 한가롭고 평온했다. 

설날과 추석 때면, 나는

나라는 사람의 비보편적임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설날과 추석이라는 대문화에 끼어들지 못 한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 대한민국 어딘가에선, 나 같은 놈들도 분명 있을 거라며 위로를 하곤 했다. 보편적인 둘레에 어울리지 못 해 나가떨어진 나 같은 놈들을 자주 상상했다. 

 

달력에는 함께해야 하는 날들이 많다.

설날과 추석,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발렌타인 데이, 빼빼로 데이, 화이트 데이, 크리스마스, 부부의 날…

달력에 맞춰 반강제적으로 누군가와 함께하며 보편적 둘레에 속한 안정감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친척이 없는, 부모가 없는, 스승이 없는, 연인이 없는,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보편적 둘레의 세계를 바라보며 그곳에 속하지 못 한 결핍으로 하루를 지새우곤 한다.

 

언젠가는, 저 기념일 하나하나를 몽땅 소중한 것으로 간직한 채

함께 해야만 하는 날들을 온전히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을까.

KBS뉴스에서 떠드는 소식에 나도 포함될 수 있을까.

그날이 언젠가는 올까. 

 

함께할 수 없는 함께 해야만 하는 날이 오면 방향을 잃곤 한다.

 

 

 

 

영화 <4번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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