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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김우근의 대화수집4 : 이젠 아니예요.

母 / 57세

子 / 29세

 

24평 가정집의 거실.

창밖으론 해가 질 무렵.

子, 신문지를 깔아놓고 발톱을 깎고 있다. 스마트폰 시계를 연신 확인한다.

무렵, 현관문 도어락 소리가 들리고,

母, 햄버거 봉지를 들고 등장.

 

子 : 늦었네요.

母 : 아줌마가 참- 말썽이잖아.

子 : 아줌마요?

母 : (햄버거 봉지를 내밀며) 자.

子 : 시장 갔다온다면서.

母 : 휴일이래. 화재가 났다나. 버거킹 있길래 사 왔지. 좋아하잖아.

子 : 얼마예요. 보내드릴게요.

母 : 오천 원. 됐어- 보내지 마.

子 : 오천 원이요?

母 : 암튼, 너도 밑에 집 아줌마한테 인사 하지 마. 참 나, 진짜-

子 : 비숑 키우는 아줌마? 뭔 일 있어요?

母 : 응- 잠깐, 옷 좀 갈아입자. 왜이리 덥니.

子 : 선풍기 켜 둘게요.

 

母, 퇴장.

子, 선풍기를 끌어와 작동시킨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꺼내 세팅한다.

母, 다시 등장.

 

母 : 아니 왜, 강아지가 너무 예쁜 거야.

子 : 동그래가지구. 그쵸?

母 : 좀 만져보고 싶어서 하는데 뭔 지랄을 그리 떠는지.

子 : 네?

母 : 지 애는 예민하다고, 말도 없이 만지면 어떡하냐고 지랄맞게 굴잖아.

子 : …

母 : 물리면 어떡할 거냐고 그러길래, 아니, 엄마 애견미용사만 8년 했는데 그게 웃긴 거지. 괜찮다고, 강아지 잘 다룬다고 좋게 말했는데 쌩 가버리잖아.

子 : 아

母 : 암튼, 인사하지 마. 싸가지가 있어야지. 

子 : 근데 시장에 화재가 났어요?

母 : 입구부터 시꺼매, 아주. 그걸로 밥 되겠어?

子 : 네.

母 : 그 빵쪼가리도 뭐 이리 비싼지

子 : 아, 얼마라고 했죠? 보내 드릴게요.

母 : 오천 원. 됐어- 보내지 마.

子 : 보낼게요. 근데 오천 원 밖에 안 했어요?

母 : 아니- 오천칠백 원인데, 엄마가 입 좀 썼지.

子 : …버거킹에서요?

母 : 키오스크인지 뭐시긴지는 어지러워서 하나도 모르겠고. 뒤에 사람들은 얼마나 눈치를 주는지. 또 카운터 가니까 거기는 현금결제 밖에 안 된다잖아. 카드면 절로 가라고 하는데, 기계 그거를 내가 쓸 줄을 알아야지.

子 : 현금 들고 다니시잖아요.

母 : 오천 원 밖에 없길래 깎아달라고 했어.

子 : …그걸 깎아줬어요?

母 : 엄마가 시장바닥 짬이 있지. 집요하면 이길 사람 없어. 엄마 말빨 알잖아. 아, 그 할머니 칼국수집은 괜찮으려나. 입구부터 새까맣던데.

子 : …그, 엄마.

母 : 암튼,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어. 옛적에는 개 키우는 사람들끼리 얼마나 살가웠는데. 시장가도 사람냄새 폴폴 나고.

子 : 엄마, 있잖아요.

母 : 응?

子 : 개는요, 허락 맡고 만져야 해요.

母 : …응?

子 : 강아지는, 허락받고 만져야 해요. 그리고… 유튜브 이런 데 보면 키오스크 사용법 이런 거 잘 나와있어요, 매장별로. 그런 것도 좀 보고 그러시고.

母 : 옛날에는 다 그랬다니까.

子 : 흥정 이런 건 이제… 하지 마요. 제 가격에 사요, 그냥. 그냥 그렇게 해요. 그게 깔끔하니까.

母 : 세상이 각박해졌어. 옛날에는 사람냄새 나고 얼마나 좋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子 : 각박해진 게 아니라… 그냥 그 세상이 없어진 거라고 생각하세요. 변화한 게 아니라 없어진 거라고. 흥정은 이제 없어요. 엄마 말빨도… 이제 괜찮으니까 넣어두시고.

母 : 옛날에는 다 그랬다니까. 응? 시장 어머님들은 더 못 챙겨줘서 안달 났지. 이웃들끼리 살갑게 인사 나누고 먹을 거 나누고. 시장 아줌마들이 강아지 지나가면 순대 내장도 던져주고 그랬다니까. 시장은 그랬지. 요즘 사람들은

子 : 엄마.

母 : 응?

子 : 이제 시장은 없잖아요. 이젠 아니예요.

母 :

子 : 사람 냄새도 없어요. 그냥, 제 말대로 해요. 이젠 아니니까.

母 :

子 : …내일 그, 할머니네 칼국수 집 한 번 같이 가 봐요.

母 : 입구부터 새까맣던데

子 : 혹시 모르잖아요. 그래도 괜찮으실지. 괜찮으셔야죠.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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