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접 장르를 경험해보며 나의 영역을 넓혀나가겠다는
호기롭디 호기로운 다짐으로
디자인과의 실습 수업을 수강하였었다. 성적이 저조된다며 나의 수강신청을 말리는 주변 인물들에게
ㅗ <- 이거를 솔직히 날리고 싶었으나, 이걸 어쩌나, 그들의 말이 맞았다.
나는 그 수업에 더이상 나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종이로 만드는 나의 이야기,
라는 주제로 페이퍼아트를 실습하였는데,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생각해 보다가,
도라에몽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생전 가보지 않았던 화방문구에 가서 4B연필과 30cm자를 구입하고,
켄트지 열 다섯 장과 화구통, 도루코 커터칼과 강력접착제를 구입하였다.
나는 이 도라에몽 탓에 꼬박 세 밤을 뜬눈으로 지냈으며
나의 독서용 테이블은 커터칼 자국이 찍찍 나게 되었다. 나 솔직히 굉장히 하기 싫었으나
내가 선택한 것에는 마땅한 고통을 질지언정 책임진다는 일념과 교수님의 격려로 계속 밀고나갔다.
그리고 어제 목요일, 95% 완성된 나의 도라에몽을 쇼핑백에 소중하게 담아
수업에 출석하였다. 교수님은 나의 이름을 호명하였고, 내 자리에 와선 나의 도라에몽을 꺼내보라는 말을 하였다.
긴장된 손으로 도라에몽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교수님은, 나를 따뜻하게 면담해주었던 교수님은,
한숨을 쉬셨다.
말문이 막혔다. 주변을 둘러보니 보기만 해도 헉! 소리 나올 법한 수준의 페이퍼아트를 만들어온
학우들이 보였고, 나의 도라에몽이 굉장히 초라해지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세 마디의 핀잔을 주고 다른 학생을 호명하였으며,
나는 그대로 가방을 싸서 강의실을 나와버렸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 강의실에 다시는 출석할 자신이 없고,
말하자면 패배해버린 것이다. 나는 패배했다.
그러나 나에게 손재주라던가, 디자인적 재능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동시에 디자인하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인간이 되었고,
내 성적표엔 F가 하나 남겠다만, 뭔 소용인가.
패배로써 배우는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못 하겠다만...
이번에 하지 않았으면 언젠가 디자인 분야로 도전이나 시도 같은 걸 분명 했을 것이다.
그 시간을 조금 앞당겼다고 생각을 하지만,
패배했다는 개 같은 기분을 떨쳐내긴 좀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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