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란, 함께하는 예술이라고
김강백 희곡상의 대빵 심사위원, 김강백 선생님은... 시상식의 강당 단상에서 마이크를 쥐고 말했다. 희끗한 백발 장발과... 초점 없는 오이도 수산시장의 동태 눈깔... 내부에 술이 가득할 것이 예상되었던 불룩한 배가, 김강백 선생님이라는 인물을 설명하기에 충분하고도 마땅했다고, 예술 분야의 거장 쯤 되는 사람들은 왜 저런...
백발의 장발과, 동태 눈깔과, 불룩한 배를 가지고 있을까. 어찌 됐든,
이 김강백 희곡상의 시상식이라는 명분이 있는 강당에,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의 처지가 꽤 영광스러운 것은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어찌 됐든 성과는 성과였다. 함께하는,
예술이라 그런지.
김강백 희곡상 단막극을 올린다는 소식도, 작가인 내가 직접 연출을 맡지는 못하지만, 성과는 성과였다. 바쁘다기 보다는 바빠야만 했던 나의 일상에, 돈이 되진 않지만 무언가 미션이 던져지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바빠야만 했으니까. 성과를 계속해서... 만들어야 했으니까.
배우 캐스팅을 완료했다고, 카톡이 온 것을 발견했을 땐
쉰내나는 나의 7평 작업실에서 나의 꼬수운 방구 냄새를 음미하고 있을 때였다. 쿰쿰하며... 미약한 불쾌감... 그런 냄새 속에서 배우들의 프로필 사진이 나의 갤럭시 스마트폰으로 전송된 것이었다. 남자 배우 둘과...
여자 배우 둘.
동등한 수준의 집중력으로 모두의 프로필 사진을 검토했다는 건 거짓말일 테다. 여자 배우 둘의 사진에 더 밀도 높은 집중력을 선사하였고...
예뻤다.
예쁘다기 보단... 온갖 이 시대 미디어가 제시한 미의 기준으로, 여실히 자신을 가꾼 여자들이었다. 도리어 실망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의 작품은, 이런 미적인 인간들이 모여 으쌰으쌰 박수 받는 연극이 아니라, 찌질하고 병신 같은 놈들이, 밑바닥에서 처절하게 울부짖는, 그런 결의, 그런 정서의 이야기란 말이다. 미, 보단, 비, 에 가까운 나의 희곡에 이런 미인간들을 등장시키는 건 개똥에 라일락 꽃이 피는 것과 같은 이치일 턴데... 함께하는,
예술이니까.
어쩔 수가 없는 걸까. 김강백 희곡상 단막극 보단, 환승연애2에 나가야 될 듯한 미남녀들이 나의 희곡을 연기해주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겨야 하는 것일까. 방구냄새가... 쉰내나는 공기와 맞짱을 뜨고 자신의 향을 잃어버렸을 때 쯤, 나는 스마트폰을 덮어놨다. 상상을 해보았다. 초라하디 초라한, 퀴퀴한 소극장에서, 쉰내나는 관객석으로 엉덩이를 붙인 얼굴 모를 사람들과... 꿈을 잃은 오퍼레이터의 표정... 그런 똥의 세계로부터 완연히 빛을 내는, 미남녀 배우들을 상상하고, 나의 좌표를 소극장 어디 쯤 찍어야 하겠다는 생각인데, 결국엔 나의 쉰내 나는 7평 작업실로 깃발을 꼽고자 하였다. 나는 힘이 없었고, 배우 캐스팅이란 것에 벼룩 만한 영향도 못 미치는, 나라는 사람이니까.
사당역 8번 출구 인근 골목길에서 연습을 진행한다고 들었다. 연출이란 사람은, 나에게 출석을 요구하였지만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거부했다. 미남녀들의 인형극을 보고... 작가님작가님 소리를 들으며 자족감을 채우고... 사당역 인근 술집에서 연습 뒷풀이랍시고 술이나 먹을 바에야... 이 쉰내 나는 방구석에서 나의 시나리오를 디벨롭하는 것이 더욱
성과라면 성과일 터였다. 그런 다짐을 했었던 건 아닌데, 언젠가서부터 나는 시나리오라는 것에 더욱 파워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교수라는 이름의 교육서비스제공자들은 그래도 함께 연극을 하자며... 함께 공연계를 발전시키고... 함께 공연산업에 이바지 되어보자며 말했지만, 함께... 가난할 순 없다는... 나의 생각.
그건, 함께하는 예술이니까.
함께... 연극하자는 건, 함께... 가난해지자는.
함께...
하는 거라고, 연출은 말했다. 공연이 일주일도 채 안 남았는데, 여전히 연습실에 나가지 않겠다는 나의 포부를 밝히고 나서였다. 그래도 인마, 한 번은 나와야지. 물어볼 것도 많고. 함께 해야지. 함께,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샤워를 했다. 작업실 유니폼이라 부를 수 있는 회색 츄리닝 세트에 쉰내가 난다는 것을, 샤워를 마치고 난 나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회색 츄리닝 세트뿐만 아니라, 작업실 행거에 무질서하게 널려 있는 옷이라는 것들에게는 죄다 쉰내가 나는 것이었다. 나는 바디워시 떡칠로 인해 향기나는 인간이 되어서, 나와 대립점에 있는, 악취라는 빌런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웅이 되어서야 비로소 빌런이 생겨나는 것처럼... 나라는 영웅은, 페브리즈라는 초특급 무기를 들고 쉰내라는 빌런들과 맞서싸우기 시작하였다.
짜라작짝짝
사당역 8번 출구 인근 지하 연습실의 문고리를 열었을 때, 작가님이십니다! 하며, 연출은 나를 소개하였고, 미남녀 배우 네 명이 나를 향해 박수를 쳤다. 실로 환승연애2에서 볼 법한, 미적 인간들이었다. 자라작작작... 나의 무반응으로 하여 박수 소리는 점차 줄었고, 그제서야 어색하게 허리를 굽히며, 또 뱃살이 접히며 안녕하세요. 하고 나서야 어색한 공기가 흩어졌다. 나는, 말하자면, 나는 똥인데요. 나에게 박수란 것을 왜 쳐서 어색하게 만드시나요. 그 어떤, 어느 인간도 똥에게 박수는 안 친답니다. 하고 말할 순 없었고, 짜라작짝짝 박수 소리를 연신 음미하며 그 모순의 깊이에 빠졌던 것이다.
파라팍팍팍
여덟 마리의 비둘기가 화들짝 놀라며 5M 쯤 날았다. 장난꾸러기 남자 배우가 PSY의 나 완전히 새 됐어, 하는 포즈로 비둘기들을 놀래켰고 여자 배우들은 유난스런 몸짓으로 비명을 질렀다. 연출은 허허... 했고 나는 난데 없는 액션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차라리 반응을 안 하는 쪽을 택하였다. 작가님 오신 김에 연습 뒷풀이나 갈까요? 네, 라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는데, 애초에 나의 의견을 중요치 않아 보였다. 거부의사를 밝히려고 말을 꺼냈으나, 여자 배우의... 아이, 그래두 가요. 하는 간질거리는 말에, 한심하게도 나는 사당역의 전주전집으로 몸을 들였던 것이다.
모듬전과 김치찌개, 송명섭 막걸리를... 연출이 주문했다. 관악산으로 등산을 다녀온 등산객들이 시끌벅적한 전집이었다. 형형색색의 아줌마와 아저씨들은 마치 에버랜드의 코스모스 꽃밭 같았고, 코스모스들은 서로 우후죽순 스킨쉽을 하며... 자신의 페로몬이란 향기를 이성의 코스모스에게 뽐내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이 무수한 코스모스들 사이서... 단연 대빵을 차지하였던 여자 배우 둘은 어찌 남자 배우 둘과 짝 지어 앉은 구색이 되었고, 연출은 나와 마주 앉아 희곡과 공연에 대한 자신의 개똥철학적인 생각을 자랑하듯 풀 뿐이었다. 송명섭 막걸리는,
졸라게 맛이 없었고...
지평막걸리나 장수막걸리를 몇 번이고 주문하고자 시도하였지만 연출이 막걸리는 송명섭 막걸리라며 나의 어깨를 연신 눌렀다. 연출은 막걸리에 취하여 자신의 입에서 똥냄새가 나는 줄도 모르고 계속 자신의 개똥철학을 늘어놓았고, 배우 넷은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전집의 천장을 가르켰다. 천장에 무언가 있나 싶어 고개를 올렸지만,
하늘에서... 토끼가 내려와... 하는 말...
같은 말이 들려오고, 바니바니 바니바니 당근당근... 나는 연출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배우 넷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은근슬쩍한 허벅지 스킨쉽과... 고추가루가 낀 줄도 모르고 활짝 웃는 하얀 치아... 미인간이 미인간에게 보내는 호감 그득한 눈빛... 들을 보며, 괜시리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전집의 천장은 낡았고, 한지로 디자인 된 벽지가 울고 있었다. 저 하늘에서... 토끼가 내려올 리는 없는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바니바니 바니바니 당근당근...
응? 뭐라고? 당근?
네? 아, 아닙니다. 음. 그래서 말이야, 지금 공연계 인간들이 진짜 문제인 거야.
바니바니 당근당근과 개똥철학과 송명섭 막걸리의 조화는 나의 머리를 팽 돌리게 만들었다. 짝! 짝! 짝! 또, 누군가가, 나라는 똥에게 박수를 치는 것인가.
연출은 나의 귀 옆으로 박수를 스타카토 박자로 치며, 야! 일어나! 일어나라고! 말했다. 으음, 쨥,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든 나는, 무수한 젓가락질로 처참해진 모듬전과 김치찌개를 목격했고, 12병의 빈 송명섭막걸리를 보았다. 배우 넷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고, 연출은 나의 팔을 들어올려 자신의 뒷목에 걸었다. 개똥철학을 전파하느라 땀흘린 연출의 뒷머리는 축축했고, 세상은 빙빙 돌았다. 저, 연출님. 연출님.
응? 말하지 마. 너 토할 거 같아.
배우들은 어디 갔어요. 배우들은요...
기억 안 나? ....예.
한참 전에 갔잖아, 인마.
....예.
배우들은, 어디로 갔을까. 짝지어 있던 미남미녀 배우들은, 또 어디선가 토끼를 찾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저 달 뒤의 토끼처럼 그거라도 치고 있는 것인가. 저, 연출님. 연출님.
왜! 말하지 말라니까, 너. 택시 곧 온단다.
함께하는 거라매요. 예?
응?
연극은 함께하는 건데, 왜 먼저 가냐구요.
연출은, 나를 똥 보듯 보았다. 당최 인과없는 헛소리로 그런 눈빛은 형성되었다. 나라는 똥은, 축축한 뒷머리를 풀어헤쳤다. 한 번 휘청였지만 넘어지진 않았다. 걷고, 또 걸었다. 연출이 나의 등뒤를 부르는 소리가 네 번 들렸지만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걷고 걸으며, 김강백 선생님을 생각했다. 그 백발 장발과... 동태 눈깔과... 불룩한 복부를 생각했다. 함께하는 예술에서... 깊고도 은밀한 소외감을 느꼈을 인간의 특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함께 해야 한다는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여실히 몸 맡기지만... 넘을 수 없는 외모 계급과 사회적 친밀도라는 기준에서, 방구석에서 몽상하는... 그러니까, 작가 같은 것들은 철저하게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그 백발의 장발과, 동태 눈깔... 불룩한 복부의 모습을 상상하며, 토끼가 내려올지 모르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짜라작짝짝
박수를, 이 똥 같은 하늘에 보내며. 그 어떤, 어느 인간도 똥에게 박수를 보내진 않는 법인데, 똥 같은 세상으로 박수를 보내니
정말로 토끼가 내게 내려와 줄 것만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니바니 당근당근과... 은근슬쩍한 스킨쉽과... 호감그득한 눈빛과...
하늘에서 토끼가 내려와 나에게 하는, 그 첫 번째 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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