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을 써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다.
써야 한다면 알아야 한다. 알아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의 오감으로 경험하지 않은 것을 글쓰기 소재로 삼지 않았다.
그걸 죄악으로 여겼다. 내가 쓴 글에는 나의 지문이 무조건 남기 마련이고
곳곳에 디테일 구멍이 나며 모른다는 티가 확확 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쓰고 싶은 게 생겼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소재였다.
그래서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 소재를 쓰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진정한 글, 나의 글이 아니며,
이건 그냥 연습용 대본이라고 자가최면을 걸며 써나갔다.
단막극 하나가 나왔다. 수준의 객관적 평가는 불가능했다.
나는 나의 온전한 상상만으로, 대본을 써본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대산대학문학상이란 곳에 투고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분량이 따라주질 않았다.
마침 적정 분량의 희곡 공모전이 있어서, 그곳에 투고했다.
희곡전문출판사인데, 2021년에 신설된 출판사였다. 총 240만 원의 상금의 공모전이었고,
별 거 아닌 공모전이라고 생각했다.
총 다섯 작품이 본선에 진출해 낭독극을 할 수 있는데,
내 습작이 포함되었다.
나는 기뻤다.
별 거 아닌 공모전이었는데, 나는 기뻤다.
온전히 내 머릿속에서 생성된 나의 세계를,
온전히 주관적인 나의 상상을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쓴 대본이었다는 것에도 의미를 둔다.
순전히 나라는 인간이 욕망 발현하여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쓴 글이다.
마감일자도 없었는데 스스로 마감지었다.
이 대본을 쓰는 동안, 나는 내 삶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기쁘기 짝이 없다. 별 거 아닌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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