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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9월 1일의 소고기 미역국과 사라져버린 접이식 밥상.

내가 중딩 2학년 때, 9월 1일에 맞는 아침은 소고기 미역국 냄새가 났다.

나의 생일을 매년, 매번 기억해 주었던 엄마가 홈플러스에 들러

한우국거리용소고기와 말린 미역을 친근히도 구매하여

나의 탄생을 기념해주던 냄새였다.

잠에 예민하였던 우리 치매 할머니는 아침부터 시끄럽게 뭘 해쌌노라 말하였지만

엄마는 아들의 생일 상 아침을 차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 듯 개의치 않아 소고기 미역국 염도의 간을 보았다.

 

내 생일을 기념해주는 것에 살짝 민망함을 느껴 기상한 티를 내지 않고 있었으나

엄마가 밥을 먹게 나오라며 불렀고 등교하는 날의 아침잠 중력을 다른 날 보다는 가볍게 느끼며

거실로 나갔더랬다. 그러나 여느 엄마의 아침밥 호출이 그렇듯,

밥상이 다 차려져있던 것은 아니오라 내가 밥상을 펴고 수저를 세팅하라는 호출이었다.

 

헌데 밥상이 사라져 있었다.

LG 티브이와 마주 본 가죽소파 팔걸이 옆 부분에 잘 정돈되어있어야 할

접이식 밥상이 감쪽 같이 사라져 있었다.

용의자는 단연 할머니였다. 우리 치매 할머니.

할머니는 치매라는 병을 지니게 된 후로

저장강박증으로 하여금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온갖 쓰레기들과 폐건전지함,

깨진 도자기 따위를 자신의 방에 숨겨놓는 동시에

정작 중요한 집안 생필품, 이를테면 두루마리 휴지, 주방세제, 그리고 밥상 같은 것을 쓰레기장에 내놓는

모순의 행동 양식을 습관화 하게 되었었다.

 

행방된 밥상에 엄마는 한숨을 쉬었고

당장 할머니를 추궁하였다. 그러나 지극히 아끼는 손자인 나의 얼굴도 종종 까먹는 할머니가

어제 내다 버린 밥상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 린 없었다.

아들의 아침 생일상 아침을 완벽히 차려주노라 소원하였던

엄마의 마음은 아마 쓰레기차에 실려가는, 어느 가정집의 멀쩡한 밥상 같았겠지.

하는 수 없이 잘 익은 묵은지와 염도조절이 잘 된 소고기미역국과 목이버섯, 당근, 시금치가

적절한 조화를 이뤄낸 잡채를 조선일보신문지, 한겨레신문지를 식탁보처럼 깐 거실 바닥에 차려내면서 말이다.

 

좌식으로 앉아 허리를 반쯤 숙여 소고기 미역국의 탁월한 맛을 퍼먹으며.

속상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에 일그러진 표정의 엄마의 입으로 한 가닥씩 들어가는 잡채의 당면을 보며.

각종 미디어로 노출되는 치매환자는 벽에 똥칠을 하거나, 헛소리를 해대거나,

이불에 실수를 종종 하는 것으로 불과하지만

치매환자를 돌보는 우리 가정집은, 어느 날 갑자기 밥상이 사라져 버리는

이토록 사소하고 구체적인 고통을 체감하였다.

주방에서 개사료를 프라이팬에 볶아 온 집안에 썩은 내가 나게 하거나,

내가 리그오브레전드의 GOLD 티어로 가는 승급전을 플레이 하고 있을 때 전기세가 아깝다며 인터넷 선을 뽑아버리거나,

쓰레기를 처리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17층 우리집 베란다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외부로 투척해

17층 이하의 사람들이 우리집 문을 신경질적으로 두들기거나.

 

신문지가 깔린 바닥에 앉아, 그런 맛있는 미역국을 퍼먹으며 생각했다.

대체 이건 누구의 잘못인가.

엄마는 슬퍼하고 있다. 나도 좋은 마음이 아니다. 나는 분명 아팠다. 그 신문지 바닥이 아팠단 말이다.

얻어맞는 거 같은데. 누군가 무차별적 폭력을 가하는 거 같은데.

때리는 사람도 분명 있는 거 아닌가. 매 맞듯 살아가는 거 같으면, 매 든 사람이 분명히 있는 거다.

할머니의 잘못인가. 그건 너무하잖아. 세상이 시키는 대로

소녀의 나이로 군인 남편과 결혼을 하여 한평생 집안일에 충실하다가

그저 운이 좋지 않아서 알츠하이머를 판정받아버린 할머니가 잘못일리는, 당연히 없다.

 

나는 나를 매 들고 때리고 있는 이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생로병사의 법칙을 뻔뻔한 얼굴로 들고 있는, 결국엔 다 늙게 만들어버리며 고통을 주입해 놓는

세상이 싫었다. 세상이란 게 인간의 형상을 띄고 있다면

분명히 엉터리의 마음가짐으로 모순된 설교만 뿌려놓는 사이비 교주 같을 거라고.

 

중2였던 나는, 그러한 소고기미역국을 먹고 등교를 했다.

생일 축하를 기념하여 롤링페이퍼도 받고, 축하한다는 인사말도 들으며.

담임쌤이 아침에 미역국은 먹고 왔냐며 물어왔던 것이 생각난다.

나는 아주 맛있게 먹고왔노라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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