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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설거지

티끌 모아 태산 격으로 쌓여 있는 설거지를 보면

한숨이 막 나오고

라텍스 재질의 빨간 고무장갑을 낄 엄두도 안 나서

회피하는 인간이 되어

눈가 주름이 짙게 잡힐 정도로 두 눈을 질끈 감아도

생활 속 늘 마주치게 되는 설거지 거리들.

 

그냥 하면 될 턴데.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알록달록 수세미에 참그린 퐁퐁을 세 번 짜내어

온수로 하여금 거품을 생성하고

그릇을 슥슥.

안 닦이면 빡빡.

몇 번의 슥슥빡빡

거품칠을 한 그릇들에게

마무리 샤워질을 선사하고

형광등 빛이 반사되어 빤짝거리는

그릇들을 물이 잘 빠지게끔 거꾸로 세워두어

차곡차곡.

 

그래, 오늘 드디어 설거지를 그냥 해 봤다. 해냈다.

고무장갑, 알록달록 수세미, 온수, 거품, 슥슥빡빡, 마무리 샤워, 빤짝빤짝, 차곡차곡.

 

그리고 내게 쌓여 있는 일들,

해결해 나가야 할 일들.

막막하고 두려워서 막 회피하고 싶은데.

일단 그냥 한 번 해보자.

묵묵히 한 단계씩 챕터를 밟아가 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