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해결해야 할 미션을 하루 중간 쯤에 놓고 아침에 일어나 글쓰기를 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분명히 해결해야 할 미션은 알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대본 쓰기도 분명히 해결해야 할 미션으로 취급하고 있다면 이런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글을 안 써도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좆 될 거 같은 상황에 도래해야 그제서야 글은 써지는 법인데
글을 쓰지 않아도 그럭저럭 삶이 흘러가도 괜찮을 거 같은 이런 마음은
일종의 유혹이다. 동해 바다가 뷰로 펼쳐지는 미슐랭 해물 파인다이닝을 애써 무시하곤
간장계란밥을 선택해야 한다.
-미니멀리즘과 내츄럴리즘. 다시 한 번 각인한다.
-조루처럼 강렬하고, 지루처럼 진득하게. 사정을 한 번 하여도 재차 세우면 된다.
-눈 앞에 책 한 권이 보인다.
아는 동생 놈이 출판을 했다고 해서
궁금하지도 않은데 사놓은 책이다.
내용은 청소년기를 보내는 이가
당연히 할 법한 말을 당연한 문장과
레퍼런스가 확연히 드러나는
일러스트로 범벅된 책이다.
난 이 책을 왜 샀지.
이만 원에 육박했던 걸로 기억한다.
책 표지와 제목과 소개만 보더라도
내용이 구릴 거란 건 분명 알고 있었는데.
대면대면 했어도 아는 동생 놈이
출판이란 걸 했으면 기념비적으로
이 책을 쟁여놔야 한다는
그런 형식적인 맘이 발동했던 것 같다.
그래, 그건 괜찮은데.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
으레 그래야 한다는 것에 의심이란 걸 한 번 품어보자.
사람은 어때야 하고.
사람은 이러해야 하고.
사람은 이럴 때 이러야 하는 법.
그딴 거 없다. 나 아닌 누군가가 정해놓은 걸
집단이 따르고 있기에 나도 하려는 거 같은데
그럴 필요 없다.
-헬스 행위를 무리하게 한 탓에
가슴과 등, 이두 삼두에 알이 심히 베겨
간단한 움직임을 수행할 때 조차도
큰 피로를 유발하고 있다.
-헬스.
최근에서야 다시 시작했다.
접때는 남을 위해서, 남 눈치를 봐서
남에 비해서 내 몸이 구려보이기에
헬스를 했다. 그러니 하기 싫었고
하루 중 헬스 미션을 해결해야 함에 큰 스트레스를 느꼈다.
그러나 이번 헬스 시작의 마음가짐은 좀 다르게 하였다.
무엇보다 힘든 근력운동의 비중을 줄이고
유산소 하는 시간을 늘렸다.
신체 움직임을 격하게 수행했을 때에
그 땀 흘리는 즐거움만 온전히 즐기게 된다.
온종일 앉아있었던 몸의 찌뿌둥함을 풀어주는 시간,
갤럭시 버즈로 음악을 들으며 내가 쓸 이야기를 생각하는 시간,
유산소를 하는 동시에 갤럭시 탭으로 전자책을 보며 부족한 독서량을 떼우는 시간.
기왕 헬스장을 왔으니 힘들면 딱 그만 둘 맘으로 수행하고 깔짝 놓아버리는 웨이트.
헬스장에 내방하는 게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뭣보다 나를 위해서 하고 있다는
그런 자의식과잉이 좋다.
-생계라는 걸 내 지적능력으로 유지하는 것. 지금 나의 바램이다.
그리고 바란다는 건 슬픈 거다. 현재 내가 가지지 못하고 있으니까.
노동능력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게 너무 지겹다.
-대본 쓰러 가자.
쓰고 있는 대본...
참 막막하다.
허나 막막하다는 걸 다르게 생각해 보면
내가 어디서 봐왔던 거, 그런 지독한 클리셰 범벅이
지금 내가 쓰고자 하는 거였으면 술술 풀렸겠지.
나는 지금 내가 어디서도 보지 못한
온전히 내가 생각한 무대를 써보려고 하니
막막한 거다.
(솔직히 내가 온전히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러나 지금까지 봐왔던 것에 내 생각이 차지하는 비율이
그만큼 높은 거겠지.
꽤 건방진 말을 했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