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기온이 물러나고 시원한 비가 한바탕 내려주며,
좀 쾌적하겠거니 싶었던 내 예상이 철없었다.
2022년 6월 19일의 지하철은 지옥이었다. 지옥을 방불케했다.
오전 8시 즘으로 기억한다. 습한 공기에 쩍쩍함이 발린 살과 살들이 우후죽순 스킨쉽을 하며,
불쾌지수는 숫자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쌍욕이란 언어로 표현해 마땅할 만큼,
지옥 속의 지옥 속의 지옥철, 그곳은 지옥철이었다.
자리가 생겼다. 내 예상이 들어맞았다.
이 지옥철에 탑승할 때 한껏 주시하던 젊은 여성이었다.
시대가 시대니 만큼 조심스레 주시했었다. 미모의 여성은 아니었으나,
아이폰을 켜 연신 시계를 확인하고, 지하철 전광판을 까딱까딱 보는 게,
곧 내릴 사람이라는 것을, 내 자리잡기 촉은 감지를 해냈고,
이 지옥철의 젊은 여성, 아이폰을 연신 켜 시계를 확인하고 전광판을 까딱까딱 보며 그다지 미모는 아니었던 그녀는, 좋아, 내 예상이 들어맞았다. 수원역에 당도해 자신의 가죽 핸드백을 정리하더니 좌석에서 엉덩이를 떼냈다.
온갖 쌍욕을 적던 내 맘속 노트는 온갖 종교의 고유명사들을 적으며 감사함을 외쳤고,
내 엉덩이가 좌석에 붙었을 땐 황제아로마마사지 안 부러웠다.
마침 VIP석이라도 되는 듯 에어컨 바람이 내 안면을 직빵으로 때려주었고,
이대로 가방에서 LG그램노트북을 꺼내 산산히 과제를 수행하기만 하다보면,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에 고통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예상은 예상에서 그쳤다.
오! 할머니! 그랜마덜! 뻑킹 그랜마덜!
이 세상은 넓고 발 디딜 땅이 몇 억만 평은 될 터인데,
왜 하필, 지금! 2022년 6월 19일 오전 8시에! 무언가로 가득 찬 분홍색 보따리를 낑낑 부여메고 내 앞에서 죽을똥 살똥하는 표정을 짓고 계시나이까!
뻑킹 그랜마덜을 발견하곤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내 시야범주에서 할머니가 사라지길 고대하여 일으킨 행동이었다. 나의 쪼리 슬리퍼와 할머니의 분홍색 등산화가 키스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나의 갤럭시폰을 켜 시계를 연신 확인하지도 않았다. 전광판을 연신 보지도 않았다. 이 할머니의 자리잡기촉에 오류가 난 것이 분명했다. 버그가 걸린 게 아닐까? 나는 열두 정거장 후에야 이 지옥철에서 안녕할 몸이란 말이다.
이대로 못 본 척을 하자고, 맘속으로 합의서를 작성했다. 서명란에 싸인을 하기까지 나의 윤리의식이란 놈과 참 많이도 겨루었다.
할머니는 여지껏 326kg의 역기를 든 장미란의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나의 표정에서 당혹과 당황을 지운 후,
4대 성인에 버금가는 평온한 신선의 표정으로 대학과제를 수행하고 있던 LG그램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겼다.
서울예술대학교 극작전공.
그제야 발견했다. 나의 LG그램노트북에 보란듯이 붙어있는, 서울예술대학교 극작전공이라 쓰여진, 파란색 스티커.
나는 이 지옥철에서, 누군가 자기소개를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의 소속을 보란듯이 밝히고 있었다.
내가 입고 있는 의상은 또 어떠한가.
서울예술대학교 극작전공이라 적혀있는 검은색 후드집업을 보란듯이 내 몸에 걸쳐두었다.
그러니까, 이 지옥철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미약한 관심이라도 가진다면, 나의 소속을 알아채는 건 분명할 테고,
낑낑대는 할머니를 앞에 세워두고 모르는 척 노트북만 주시하는 젊은이는 관심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노트북에 붙은 스티커와 이 후드집업의 무게가 그토록 무거웠다. 장미란의 326kg 역기에 버금가는 무게의 짓눌림이었다.
이러한 의식이 생기고나니, 언뜻 언뜻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2022년 6월 19일은 아이폰이든 갤럭시든, 스마트폰으로 점령된 시대였다.
이 지옥철에, 인생포기를 자처한 일베회원이 탑승해 있다면?
지하철 게이야, 좀 비켜주지 그랬노.
하며, 나의 사진을?
아니면, 그릇된 페미니즘에 빠진 이 시대의 운동가가 탑승해 있다면?
분당선 무개념 한남충ㅉㅉ
하며, 나의 사진을?
그렇게 서울예술대학교극작전공 옷을 입고 노트북 스티커를 붙여놓은 나의 사진이 인터넷으로 일파만파?
그렇게 서울예술대학교의 에브리타임까지도? 나의 신상은 급속도로 까발려지며 퇴학을 외치는 대자보까지?
지하철은 지하를 빠져나와 지상을 달리고 있었다. 흐린 날씨로 축처진 나뭇잎이 창밖으로 보였다.
내가 앉아있었던, VIP석으로 에어컨을 안면을 향해 직빵으로 때려주었던, 황제아로마마사지 안 부러웠던,
그 천상의 곳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그랜마덜은 분홍색 보따리를 다리 사이에 놓고 한시름 놓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일베회원도, 그릇된 페미니스트도, 나의 자리양보 사례를 저이들의 커뮤니티에 소개할 리는 없었다.
어찌됐든 결론은 선행이었던 나의 행동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자리를 잡지도 못한 채 사라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나뭇잎은 처져있기만 하지, 나를 칭찬해주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늙음에 당도하였을 때, 누군가도 나에게 선행을 베풀겠지.
하며, 다시금 순환이란 가치를 되새겼다. 쩍쩍한 살과 살들이 서로 키스를 하고 있던 분당선 지옥철에서.
내가 늙었을 땐 지하철이 하늘을 달릴까?
그때는 하늘철이라 불러야 하나, 그럼 비행기는 어떻게 되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부도를 맞는가.
어찌됐든, 할머니의 자리잡기 촉은 오류가 난 것이 아니오라. 버그가 걸린 것도 아니오라.
저 한시름 놓은 표정을 보라.
헌데, 어찌 나도 한시름 놓게 되었다.